망명 실패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그리고 의친왕 후손들의 가짜 역사 만들기에 속아 많은 이들이 의친왕을 독립운동가 또는 적어도 비운의 왕족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각은 뿌리 깊었다. 그는 축첩만큼이나 일본 생활을 즐겼다. 대한제국 시대에는 황실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며 이토 히로부미에게 하소연을 했으며, 국권 피탈 직후에는 한국과 일본이 칠과 아교가 되었다며 송축했다. 데라우치에게는 일본행을 막지 말라 호소했고, 망명 기도 후 잡혀와서도 두려움 속에 일본행을 제안했던 것 역시 그였다. (일제가 아니었다.) 그랬던 까닭에 해방 직후 자신의 저택 사동궁을 빼앗길까 두려워 잽싸게 매각했던 그였다.
여전히 의친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신조 미치히코 지음, 이우연 옮김, 조선왕공족-제국일본의 준황족, 백년동안, 2022.(원저: 新城道彦, 朝鮮王公族-帝國日本の準皇族, 中央公論新社, 2015.) |
저자 신조 미치히코는 일본 내 남아있는 많은 자료로 이왕가를 복원했다. 그가 본 자료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자료들이다. 이런 자료들이 소개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기에, 여전히 거짓말을 일삼는 무리가 횡행하며, 협력자를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키고 있다. 이는 역사왜곡이자 어렵게 독립운동을 했던 선조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럼 그곳에 실린 전직 의친왕 이강공 한 대목을 인용한다.
"이강공은 건강이 좋지 않은 형 이왕(순종)이 이왕가의 제사를 대행하라고 부탁해도 병을 칭하여 거절하고 게다가 이왕과 이왕비의 탄신 축하연, 신년 연회, 오찬회 등에도 빈번히 결석했다. 그런 반면에 1912년 메이지 천황 장례, 다음 해의 메이지 천황 1주기제, 1916년 천장절과 입태자례 등 황실에 관계되는 행사에는 이왕의 대리인으로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메이지 천황이 사망했을 때는 왕공족 중에서 단 한 명, 그 혼자 1년간 상복을 입고 상장(喪章)을 달고 생활했다."(한국어판 pp.155~156)

숙명여자대학교에는 이 책도 없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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