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가 사람들

김가진이 의친왕에게 주었다는 글씨-신뢰할 수 없는 그들의 증언

자불어 2026. 3. 19. 23:57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홈페이지(https://kwmuseum.org/86)

太乙峰前處士家
丹爐藥竈舊生涯
江城戀酒不歸去
老卻碧桃無限花

태을봉 앞 처사의 집
단약을 제조했던 지난 삶
강가 도시의 술이 그리워 돌아가지 못하나
늙어가는 푸른 복숭아는 끊임없이 꽃을 피우네.

光武九年秋日書于白雲山莊
漢城 金嘉鎭

광무9년(1905) 가을날 백운산장에서 쓰다.
한성 김가진


인장
(좌상단) 羣賢畢至少長咸集
여러 현자가 모두 도착하자 젊은이와 노인 모두 모였다.
*출전: 왕희지, 난정서
(우하단) (백문방인) 金嘉鎭印, (주문방인) 東農


의친왕기념사업회 소장 김가진 작품.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도, 전시도록에도 자세한 설명이 없기에, 여기 해석을 더한다. 의친왕기념사업회는 김가진이 이 글씨를 써서 의친왕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신뢰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1. 김가진이 의친왕에게 주는 글이었다면 그는 신하의 예로, "받친다", "올린다" 등의 표현을 썼을 것이다. 이 글씨를 그냥 주었다면 무례한 행동이다.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 황실에 마지막까지 충심을 받쳤던 그가 그랬을 리 만무하다. 

2. 의친왕이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것은 1906년 4월 7일이다. 김가진이 이 글씨를 쓴 1905년 가을 의친왕은 국내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귀국 여부 조차 불투명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의친왕에게 줄 글을 미리 써놨다는 건 넌센스다. 

3. 그리고 내용을 보라. 이것은 노년의 안일한 삶을 바라며 속세에 있음을 한탄한 글이다. 글씨를 준다는 것은 단순히 서예작품을 주는 것이 아니다. 글씨를 쓰는 사람은 대상을 생각해 내용을 고려한다. 그러나 이런 글을... 한참 젊은 의친왕에게 줄 글이 아니다.

그냥 "의친왕을 상해로 모시려고 했던 김가진 글씨다"라고 했다면 충분한 설명인 것을 끊임 없이 독립운동이란 밥상에 숟가락을 얹고자 하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허설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feat: 자료의 내용도 모르고 전시한, 해석 능력 없는 박물관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