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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공 민영환, 영국박물관에 가다

자불어 2022. 3. 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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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은 민씨 척족의 일원으로 일찌기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러일전쟁 직후에는 내부대신, 군법교정총재, 학부대신, 참정대신, 외무대신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일본에 과도한 내정간섭에 반대하여 시종무관으로 밀려났고 을사늑약 체결 후 을사오적의 처형과 조약 파기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 등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사후 충문이란 시호를 내렸으나 바로 충정으로 고쳤다. 서울 충정로는 그의 시호에서 딴 것이다. 아래 글은 1897년(광무1) 민영환이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6개국 특명전권공사로 유럽을 돌 때 기술한 것이다. * 대영박물관이라고 하나, 영어 이름도 The British Museum인 만큼 영국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듯하다.

 

민영환(1861~1905)

건양2년(1898) 6월 28일 맑고 따뜻함. 음력29일. 정오가 되기 전 접반관 갑인니시가 마차 한 대를 끌고 와 시가를 유람하였다. 철교를 지났는데, 이것이 이른바 런던교(London bridge)다. 다리는 템즈강 물 위로 놓였는데, 첨탑 누각이 네 개가 있다. 그 안에는 기계 톱니바퀴가 있는데, 그 무게가 수십만 근에 달한다. 한명이 열었다 닫았다 한다. 다리를 열면 사람들이 오가는데, 그 길이 허공에 떠 있어 마치 무지개 양쪽으로 떨어지는 듯하다. 또 강변에는 포대를 설치하고 등탑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대략 백여 장이다. 모두 장관이다.

 

런던 타워브리지 / 1894년 완공했다.


돌아오는 길에 박물원(The British Museum)을 들렀다. 박물원에는 석인이 있는데, 수십을 헤아린다. 모두 로마 고대 제왕의 상이라 하는데, 나체에 맨발이다. 그곳을 지나자 오래된 관이 십여 개 있다. 모양은 두개의 구유를 붙여 놓은 듯하다. 모두 나무 재질이고 겉에 정련한 동을 둘렀다. 표면에는 과두문자처럼 보이는 장식이 있다. 옛 비석도 있고 작은 벽돌도 수 없이 많다. 표면에는 글자가 기록되어 있어 마치 한의 와당이나 진의 전돌처럼 보이는데, 모두 박락되어 알아보기 힘들다. 좀 더 가자 각색 고검과 팔찌, 고화폐로 수십 개의 진열장이 채워져 있다. 모두 수천 년 된 물건으로 대부분은 이집트에서 사온 것이라 한다.

 

영국박물관 정문


또 다른 곳으로 가니 거대한 짐승의 뼈 수십 개가 있는데, 어떤 다른 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다. 이 또한 4~5천년 전의 짐승들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한다. 또한 대형 물고기의 뼈도 있는데, 길이가 수 장에 달한다. 각종 금수들도 털가죽을 그대로 유지한채 마치 살아있는 듯 자태를 취하고 있다. 또 어떤 곳에서는 금은옥석구슬류가 있는데, 넓은 진열장에 가득 있다. 모두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들이라 한다. 황금괴는 크기가 다듬잇돌 만 하고, 보석은 비둘기알 만하다. 또한 고대의 금은, 도자, 석재로 만든 각종 기구들이 있는데, 갖추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그 옆에는 알수 없는 덩어리가 있는데, 철도 아니고 돌도 아닌 것이 색은 아주 까맣다. 수백년 전 하늘에서 청국 광동지방에 떨어진 것이라 알려져 있다. 성정이라고도 부르는데, 황당한 일이다.

 

영국박물관 이집트실

다시 장서각(영국도서관 The British Library)으로 갔다. 두 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둘레에 층층이 서가를 만들고 각 서가마다 5천권의 책을 꽂았다. 상아 첨대처럼 정연하고 단황 같이 화려하니 모두 200만 권이다. 서가가 있는 곳은 밤에도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여 학자들에게 어느 때고 와서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학문을 권하는 뜻이 가히 우러러 볼만 하다.

(建陽二年六月) 二十八日 晴溫, 陰曆二十九日 未正, 接伴官갑인니시, 邀一行乘馬車, 遊玩街上, 過一鐵橋, 所謂倫敦橋者也, 橋跨泰晤士江上流, 矗立樓坊四座, 中爲機輪, 重數十萬觔, 一人, 可以開合, 橋開則人從上過, 復道行空, 彷彿采虹雙落, 又江邊, 設砲臺, 建燈塔, 高約百餘丈, 皆壯觀也, 轉至博物院, 院中石人, 以數十計, 係皆羅馬古帝王像, 多裸體跣足, 再進, 則古棺柩, 計十數, 形似兩槽相合, 皆木質而精銅, 包裏其外, 面有蚪蝌字樣, 又有古碑, 及無數小磚石, 面有字蹟, 殆如漢瓦晉甎, 皆剝落難辨矣, 再進, 則各色古劍釧, 古刀錢之類, 充滿數十幮云, 皆數千年物, 多自埃及購來者, 再進一處, 有巨獸骨十數, 絶大無比, 亦係四五千年獸, 近則皆不産云, 又有大魚骨, 長皆數丈, 又各種禽獸, 均具皮毛, 宛若生動, 又一處, 金銀玉石珠具之屬, 充滿廣幮, 皆本質生成者, 有黃金塊, 大如砧石, 寶石, 大如鴿卵, 又古時金銀磁石, 各種器具, 無不備焉, 傍有一塊物, 非鐵非石, 色甚黑, 洵知數百年前, 自空中墜下於淸國廣東地方, 或云星精, 事屬皇唐也, 又至藏書閣, 樓爲兩層, 環置層架, 各架揷書, 五千本, 牙籤整齊, 丹黃㶷爛, 共計二百萬卷, 架底設機輪, 以手推之, 則前後旋轉, 使爲無難抽閱, 樓下有廣廳, 列置床几數十, 以爲衆人讀書之所, 夜繼電煤, 令學者, 無時來閱, 其勸學之意, 亦足可尙也。

민충정공유고閔忠正公遺稿 권4卷四 사구속초使歐續草 기사記事, pp.18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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