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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나무위키는 의친왕 육남 "이곤(李錕, 1919~1984)" 항목에 그가 "릿쇼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고 했다. 여기에 덧붙여 그래서 영어와 독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의친왕기념사업회 홈페이지도 "릿쇼대학 영문과 졸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1950년대 평화신문은 그가 졸업한 학교가 릿쇼"대학"이 아니라 릿쇼"중학"이라고 언급했다. 이곤(일명 이명길)씨는 4253년(1920) 11월 4일 이강 공의 육남으로서 모친 김씨(이강공의 삼첩三妾)의 몸에서 출생한 후 8세 때에 일본에 도항하여 동경 입회소학교立會小學校를 졸업하고 동경 사립 입정중학교立正中學校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에서 중퇴하였다고 한다. 4271년(1938) 8월에 귀국하여 시내 종로구 견지동 85 사동궁에 거주 시 충청남도 논산군 구자면 금곡리 XXX..

#세종시와대한황실의독립운동기록과시대의증언 비판 02. 적십자사 사장 의친왕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는 의친왕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포럼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역사왜곡으로 점철된 “집안 띄어주기”에 불과했다. 그날 허위 사실을 하나씩 잡아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적십자사 사장" 의친왕 편이다. 의친왕기념사업회장 이준은 자료집에 다음과 같이 썼다. “1906년 7월 12일 의친왕은 고종황제로부터 칙명을 받고 대한적십자사 재에 취임하여 미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서양식 의료체제를 한국에 적극 도입하였다. 대한적십자회 역시 해외에서 비밀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중요한 단체가 된다.”(이준, 황실 독립운동의 중심 사동궁과 의친왕의 항일운동,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폭행 피의자를 업무 시간 중에 찾아가 기자를 사칭하며 언론사를 겁박하던 전라남도 목포경찰서 계장은 여전이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형님 도와주려 한건데” 이리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건 공권력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다. 범죄혐의자를 단지 예전에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나서서 심정적인 지지를 넘어 사칭까지 하며 겁박했다면, 그리고 이런 행동이 경찰 내에서 용인 된다면 누가 경찰을 신뢰하겠는가. 그 계장은 변명이랍시고 ”그 형님의 의리”를 말했다. 그건 건달이나 쓸 말이지 경찰의 언어가 아니다. 경찰이 건달이 되었는데 엄정한 처벌이 없다면 집단이 건달임을 자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전라남도경찰은 엄정 처리하고 아주뉴스는 이 일을 끝까지 추적해야한다. 지역 경찰을 위해서라도. 응원..

#세종시와대한황실의독립운동기록과시대의증언 비판 01. 삼성장군 의친왕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는 의친왕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포럼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역사왜곡으로 점철된 “집안 띄어주기”에 불과했다. 그날 허위 사실을 하나씩 잡아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육군 3성 장군" 의친왕 편이다. 자료집 첫머리의 의친왕 소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1905년 귀국하여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서양 의술을 적극 들여오는 한편 대한제국 육군 3성 장군으로 군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해산 당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무슨 업적을 세웠는지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일단 “대한제국 육군 3성 장군” 시절을 보자. 고종실록에는 의친왕에게 육..

The fall of the Korean Empire was largely due to the role of King Gojong, who was an incompetent and foolish ruler. Sunjong, the next king, lacks presence even as much as the recent statue episode, leading people to pin their hopes on Prince Yi Kang. However, as Yi Bangja and even Yun Chi-ho pointed out earlier, Yi Kang was known for his reckless spending and was notoriously indulgent, especiall..

한국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53년, 일제강점기 공가로 호의호식했던 의친왕 이강 씨의 육남 이곤 씨가 부동산 사기 혐의로 검거되었다. 아래는 그 뉴스다. (평화신문 1953년 6월 14일)그는 왜 사기를 했나. 왕족 이곤씨의 생활 기록8.15.라는 역사적인 전환기에 부닥쳐 궁궐을 쫓겨나와 생활고라는 무자비한 질곡 속에 허덕이고 있는 이왕 후예들의 신산한 몰락 과정을 말하는 호개의 자료로서 소위 구왕궁을 팔아먹었다는 왕족 이강공의 육남 이곤(34세) 씨의 오늘에 이른 생활 기록을 소개해 보자. 이곤(일명 이명길)씨는 4253년(1920) 11월 4일 이강 공의 육남으로서 모친 김씨(이강공의 삼첩三妾)의 몸에서 출생한 후 8세 때에 일본에 도항하여 동경 입회소학교立會小學校를 졸업하고 동경 사립 입정중..

의화군 이강, 훗날 의친왕은 행실이 불량했다. 이는 이방자도, 윤치호도 지적한 바 있다. 일단 그에게는 낭비벽이 있었다. 의친왕의 후손들은 의친왕의 미국 유학하며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승만이 목도했듯 그는 "유學"하며 공부에 별 뜻을 두지 않았다. 나라는 풍전등화에, 백성들은 주렸지만 의친왕은 돈을 물 쓰듯이 쓰고 다녔다. 매년 대한제국은 그에게 매년 4,000달러를 보내주었음에도 그는 미국의 대부업자들에게 30,000달러라는 거액의 빚을 졌다. 미국신문은 동양의 작은 나라 왕자의 거대한 씀씀이를 이렇게 기록했다. (사진 아래 번역 있음) 돈을 기다리며 왕자의 코니아일랜드 방문, 대부업자의 청구서엔 3만 달러가. 뉴욕, 2월 6일: 한국 이희 왕(고종)의 셋째 아들인..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사망했다.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독살설이 1919년 이래로 이어지고 있다. 매일신보에는 고종의 최후를 지켜본 의사들의 진술이 있다.태왕전하 훙거 환후 경과 전하께서는 며칠간 불면증에 시달리시더니 21일 아침 1시 45분 주무시던(暇寐睡眠) 중 돌연 우측 반신에 경련이 일어나고 이어 좌측까지 이어져 약 3분간 완화(緩解)되신 바 즉시 진료하니 오른쪽으로 누워 주무시는 위치에서 맥박은 115로 가지런해 조금도 이상이 없었고 체온도 36도 5분을 보여 정상 범위를 넘지 않았다. 동공은 모두 간신히 축소되어 반응에도 다시 이상이 있지 않았으며 동공은 좌우가 모두 간신히 축소가 되어 반응에 다시 이상이 있지 않았고 또 지각계에는 하등 이상(變調)을 보이지 않..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전직 경찰관 60대 a씨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이웃의 여성 b씨에게 지 집앞으로 개를 데리고 다닌다며 욕설을 하고 각목으로 폭행 9주의 상해를 입혔다. 심지어 폭행 후 "아직 안 죽었네"라고 비아냥거리기도. 2. 이 정신나간 전직 경찰관 a씨의 부인은 전 목포시 의원 c씨였다. 3. JTBC 기자는 이 사건을 c씨까지 거론하며 소개했다. 이유는 피해자 b씨와 그 가족이 a씨 가족의 지역의 유지인 탓에 사건이 유야무야 될까 걱정되어서였다. 4. 아니나 다를까? 기사가 나가자 b씨의 사촌이라는 인간 f가 등장, 기자에게 연락해 고소미 먹이겠다는 둥 기사를 내리라며 겁박했다. 심지어 자기도 기자 출신이라고 했다. 5. 그런데 알고보니 그 f는 목포경찰서(서장: 김범상 총경) ..

여성 선각자 하란사 또는 김란사"마지막 왕국"이라...깊어 가는 어느 날 밤이었다. 훌륭하게 차린 귀부인이 하녀들의 등불을 따라 스크랜튼 부인의 방을 두드렸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 불을 껐다. “지금 내 속이 이렇게 캄캄합니다. 나에게 지식의 등불을 밝혀주십시오.” 귀부인은 이렇게 말하며 자기를 입학시켜 줄 것을 간청했다.[경향신문 1962.7.2., 대학가의 리창(裏窓), 이화여대(2)]위의 귀부인이 바로 남편의 성을 써서 하란사河蘭史로 불렸던 여성, 김란사다. 그녀는 평양 출신으로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첫 미국 학위소지자다. 그녀는 귀국해서 여성 교육에 앞장섰다. 여러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제자를 양성하는 한편 여권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