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모용희 (2)
일상 역사
후연後燕과 북연 北燕을 잇는, 북연 초대 황제 모용운慕容雲의 전기로 진서晉書(재기載記)에 실려 있다. 모용운은 본디 고씨로 고구려 왕족의 지파였다. 고구려 출신인 모용운이 천왕天王으로 추대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를 추대한 풍발馮跋 역시 고씨高氏를 명문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모용씨 선비족과 고구려의 관계, 경계를 이동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모용운 慕容雲 모용운慕容雲의 자는 자우子雨로 모용보慕容寶의 양자다. 조부 화和는 고구려 왕족의 지파로 스스로 고양씨高陽氏의 후손이라 하여 고高를 성으로 삼았다. 운은 사려 깊고 체계적인 사고력을 갖추었으며 중후하고 말수가 적었다. 사람들이 모두 우매한 것 아닌가 생각했으나 오직 풍발馮跋 만은 그의 뜻을 높이 사서 벗으로 삼았다. 모용보가 ..
진서晉書에 수록된 후연의 마지막 군주 모용희의 전기다. 무공은 탁월했지만 어려서는 형수 정씨丁氏와 간통하고, 나중엔 부씨苻氏 자매에게 빠져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십육국 시대는 워낙에 폭군이 많았던 터,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광개토대왕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인물로 모용성 때에는 장수로 고구려의 신성新城과 남소성南蘇城과 함께 영토 700여 호, 백성 5천 여호를 빼앗았는데, 정작 자신이 군주일 때는 광개토대왕에게 발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용희 慕容熙 희熙는 자가 도문道文으로 모용수慕容垂의 작은 아들이다. 처음에 하간왕河間王에 분봉되었다. 단속골段速骨이 난을 일으켰을 때 모용씨 여러 왕이 살해당했지만 희는 고양왕高陽王 숭崇에게 총애를 받아 죽임을 면할 수 있었다. 난한蘭汗이 모용보를 죽인 뒤 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