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백제 (3)
일상 역사
일제의 잔재를 지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설령 그 시대가 진정 치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잔재를 후손에게 물려주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흔적을 지우고 없애려고 힘쓰는 이들이야말로 증거를 인멸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자들이다. 몇 년 전 충청남도 부여의 사자루 현판 사건은 그 대표적 일례다. 부여는 백제의 고도로 부소산성은 수도가 위기에 처할 때 농성 하고자 만든 산성이다. 오늘날 부소산성 정상에는 사자루라고 하는 누정이 있다. 사자루泗泚樓는 부소산의 다른 이름이 사자산泗泚山이오, 부소산성의 다른 이름이 사자성泗泚城이었기에 붙은 이름이나 부여의 옛 이름이 사비泗沘인 데다 한자도 비슷하게 생겨 ‘사비루’로 잘못 읽히기도 했다. 앞면 3칸, 옆면 2..
먼저 판교박물관 방문을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 개관일: 화요일~일요일 09:00~18:00 (17:30 입장 마감)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국경일, 설/추선 연휴기간 *서울에서 오시는 분들은 남대문시장, 고속버스터미널에서 9007번 버스를 타시면 바로 앞(성내미육교/판교박물관 정류장)에 내릴 수 있습니다. http://www.pangyomuseum.go.kr/pg/main/index.do / 문의전화: 031-729-4535~7 판교박물관에는 과거 판교에 있던 백제와 고구려의 무덤이 있습니다. 두 나라의 무덤 형식인 돌방무덤의 특징을 잘 살펴 볼 수 있죠. 백제 때는 수도 한성 주변의 요충이었을 테고, 고구려가 한성을 점령한 이후로는 백제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 합니다. 고려..
다이안지는 쇼토쿠 태자가 아스카에 지은 구마고리쇼샤(熊凝精舎)에서 시작하여 헤이조쿄로 이전하며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나라칠대사 가운데 하나로 당시 사찰의 규모는 도다이지(東大寺), 고후쿠지(興福寺)에 버금갈 정도고 커서 “남대사(南大寺)”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1017년에는 두 개의 목탑이 모두 불타버렸고, 에도시대 중건 시도가 있었지만 옛 모습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오늘날 사찰의 바깥에는 칠층탑 기단터가 남아있어 지금보다는 훨씬 컸던 예전 사역을 짐작케 해준다. 사찰 내에는 나라시대의 유품으로 8세기 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9개의 목조불과 기와 등을 갖고 있다. 사찰이 쇠퇴했는데도 여전시 창건 시대의 신앙물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그런데 목조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