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서역 (4)
일상 역사
가와데쇼보신샤河出書房新社에서 나온 “세계의 역사” 시리즈 총 24책 중 제10책이다. 1989년 11월 4일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하 소개하는 책은 2007년 5월 20일 발간된 7쇄본(가격 850엔, 세별)이다. 그런 점에서 다소 오래된 저작이라 하겠으나, 여전히 이 방면의 교양서적으로 생명력은 여전하다 하겠다. 겉표지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책 소개가 있다. 사막과 “방황하는 호수”가 있는 중앙아시아에서 동서교류의 길 실크로드를 살펴보고 사막에서 사라진 오아시스 국가를 돌아보며 그 항쟁·흥망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세계사의 공백을 처음으로 메운 서역에 관한 획기적 통사”저자는 하네다 아키라 羽田 明(1910~1989) 등 3명이다. 하네다 아키라는 일본의 역사학자, 교토대학 명예교수. 그리고 저명한 ..
이하는 헝가리계 영국인 탐험가 아우렐 스타인(Sir Marc Aurel Stein, 1862~1943)의 투루판 아스타나 고대무덤 발굴 기록으로 그의 저서 Innermost Asia(Oxford, 1928)에 수록되어 있다. 608년, 624년 기년이 있는 벽돌 묘지 무덤 i. 4로 연결되는 트렌치를 정리하며 우리는 입구로부터 26피트 떨어진 지점, 거의 지표면과 일치하는 높이에서 명문이 있는 전돌 3건이 남쪽을 향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출로 군데 군데 희미해진 문자는 검은 바탕에 붉은으로 썼다. 이 명문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어려웠던 까닭에 인화해도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지 못했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어쨌든 Li Ssû-yeh와 L. Giles 박사는 606년과 646년에 해당하는 기년을 확인해..
이주는 오늘날의 하미이다. 태종 때 이오의 호인이 귀부하자 서이주를 설치했다.(630) 처음에는 기미주로 운영하다가 이주로 이름을 바꾸고 직할 주로 편재했다. 돈황 발견 천계원년 사주이주지지(沙州伊州地志)에 “보응연간(762~763) 토번에 함락되었다. 대중4년(860) 장의조가 수복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보응 원년 하서 제주는 여전히 건재했다. 아래 기록은 이주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 원광정은 하서 수장이다. 천보말년 이주자사가 되었다. 안록산의 난으로 서북변경의 수비병이 반란 진압에 투입되면서 하서, 농우의 군읍이 모두 토번에 함락되었다. 오직 광정 만이 수년간 이주를 지켰다. 외부로부터 구원이 당도하지 않자 오랑캐는 여러 가지를 내밀며 꾀어냈지만 그는 끝내 굽히지 않았고 부하들도 뜻을 같이 ..
모난 돌이 정 맞듯이 사람들에게 스케치북처럼 보이는 돌도 있다. 울산 천전리 암각화는 누가 봐도 스케치북이나 광고판처럼 보인다. 저 멀리 서역에도 그런 바위가 있었나 보다. 사람들이 오래 산 터전은 다 이유가 있듯, 새기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 환채구비가 있는 길은 사막 오아시스와 초원지대를 연결하는 통로로, 사막 오아시스는 여기를 통해 목재를 수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640년 고창국 원정 직전 당의 장수 강행본(姜行本)도 이 길로 나무를 가져와 투석기를 만들었다. 이하 설명은 마옹(馬雍)의 글을 옮긴다. 사진은 바이두에서 다운 받은 것인데, 글자는 못읽더라도 한번 가보고 싶다. 동한 영화5년(140) 환채구비(煥彩溝碑), 옛 사남후비(沙南侯碑) 환채구(또는 환차이거우)는 하미(哈密)에서 바리쿤(巴里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