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조 (2)
일상 역사

전조前趙의 대산臺産 (전조前趙의 황제, 흉노족) 유요劉曜 때 재난과 이변이 너무 심해 공경에게 명하여 각기 박식하고 직언하는 인사 1인을 천거하도록 하였다. 그 가운데 대사공大司空 유균劉均이 대산을 천거했다. 유요가 친히 동당東堂에 나가 중황문中黃門을 보내 대책을 묻게 했다. 대산이 그 연유를 두루 설명하자 유요가 살펴보더니 찬탄하여 친히 불러 대면하고 정사에 참여시켰다. 대산이 흐느껴 울며 재변의 화를 진술하고 정치와 교화의 부족한 부분을 언급하니 그 언사가 심히 간절했다. 이에 유요가 표정을 바꾸고 예를 차리더니 그를 박사좨주博士祭酒・간의대부諫議大夫・영태사령領太史令에 임명하였다. 이듬해 그 말의 징험이 드러나자 요는 그를 더욱 중용하여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임명되었다. 한해에 세 번 승진하여 상서尙書・광..

“판관 포청천”은 타이완의 명작 드라마로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 관직은 판관이 아니라 개봉부윤, 요즘 우리로 따지면 서울특별시장이다. 당시에는 재판, 치안유지가 지방관의 중요 직무였던 만큼 판관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럼 칠협오의가 빠진 실제 포청천의 모습은 어땠을까. 송사는 원나라 때 몽골족이 책임을 맡아 편찬해 부실하다고 하나, 여하튼 송사 포증 열전을 읽어보자. 포증包拯(999~1062)은 자가 희인希仁으로 노주廬州 합비인合肥人이다. 진사進士로 시작하여 대리평사大理評事를 제수받았다. 외임으로 나가 건창현建昌縣 지현知縣에 임명되었지만 부모가 모두 연로하다는 이유로 고사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후에) 화주和州 감세監稅가 되었으나 부모가 또 원치 않자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부모를 봉양했다. 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