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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유비가 촉 땅에서 바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유언-유장 부자가 만들어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정사 삼국지의 편자 진수도 촉서 서두, 유비의 앞에 선주전을 두어 유언, 유장 부자의 사적을 기록했다. 그럼 이하 그 첫 번째 유언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까만색은 삼국지 본문, 하늘색은 배송지 주석) 유언劉焉의 자는 군랑君郎이며 강하江夏 경릉인竟陵人이다. 한漢 노공왕魯恭王의 후예로 장제章帝 원화元和 연간 경릉竟陵으로 이봉된 지파다. 언焉은 어려서 주군州郡에서 일했는데 종실宗室인 까닭에 중랑中郎에 배수되었으나 후에 스승 축공祝公이 죽자 벼슬을 떠났다. [배송지 의견(臣松之案): 축공은 사도司徒 축염祝恬이다.] 양성산陽城山에 살며 학문에 매진하다가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발탁되어 사도부司徒府에..
제융(祭肜)은 후한 전기 요동태수를 역임하며 흉노, 선비, 오환 등 이민족 관리에 공적을 세웠다. 초기 고구려 역사에도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하는 후한서(後漢書) 열전 제융(祭肜)에 실린 글이다. 제준(祭遵)에게는 종제 제융(祭肜)이 있다. / 융의 자는 차손(次孫)으로 일찍 홀로 되었는데, 효도를 다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천하에 난이 일어나 들에 밥짓는 연기가 사라졌는데도(사람들이 모두 떠났는데도) 홀로 무덤 곁을 지켰다. 매번 적들이 지나가면 한창 어린 것이 뜻이 곧다며 모두 기특하게 여기며 슬퍼하였다. 광무제(光武帝) 즉위 초에 제준의 추천으로 융을 황문시랑(黃門侍郎)에 배수하여 항상 곁에 두었다. 제준이 후사가 없이 죽자 황제가 애도를 표하며 융을 언사장(偃師長)으로 삼아 준의 무덤 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