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가문의 형제들을 보면 서로 간의 우애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폐쇄된 환경 속에서 가장 치열한 적자생존을 해야 하기에, 부모, 형제, 친척의 의리라는 것이 범인의 세계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 형제 사이에 공적 가로채기가 이어지고 있는 곳이 봉건시대의 왕실이다. 따라서 조선 국초의 왕자의 난도 형제간의 의리만으로 살필 수는 없다.
오늘 의친왕 후손 한 명은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의 부친 이곤이 의왕 유품을 오륜대 순교자박물관에 기증했다고 언급했다.

의친왕 유품 기증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을 찾아보면 의친왕의 유품을 기증한 사람은 의친왕의 아들이 아닌 의친왕비 김덕수(金德修, 1881~1964)로 나온다. 국가유산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의친왕비는 세례를 받고(세례명: 마리아) 의친왕의 유품을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기증했다고 한다. 의친왕비가 세례를 받은 날은 1955년 8월 15일이므로, 위 기록대로라면 그 전후였을 것이다.

또한 조선일보 신문기사에서도 "김마리아" 즉 의친왕비가 기증했다고 밝혔다.
“민속자료 중에는 천주교를 박해하던 대원군의 의상을 비롯, 왕실의 호화로운 생활 유품들이 수집되어 있다. 이들 유물은 의친왕 이강의 부인 김마리아 여사가 기증한 것들이다.” (조선일보 1982.9.23. / 천주교수난자료 300점 공개(부산 오륜대순교자기념관 25일 개관)
개인 소장의 역사 자료를 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그래서 박물관들은 해당 소장품의 기본 정보에 기증자를 추가하고 그밖에 다양한 방법으로 기증자에 예우를 갖춘다. 부모님의 유품인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모님의 이름으로 기증한다. 돌아가신 분의 유품이라는 기록과 명예를 돌려드리기 위함이다. 이 경우, 돌아가신 뒤에 기증한다고 해서 “유증”으로 따로 구분한다.(국외의 경우도 동일하다.) 의친왕비는 일부 물건을 의붓딸 이해경이 물려 주었고 이해경은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 기증했다. 오륜대순교자박물관이나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 나뉘어 있는 의친왕가 자료 정보에 ‘이곤’이란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의친왕비가 기증할 무렵인 1950년 중반에 의친왕비는 의친왕 재실에, 이곤은 덕수궁에 서로 떨어져 살았다. 이곤이 기증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조모의 이름으로 기증한(유증도 아닌) 문화유산을 부친이 기증했다고 바꿔치기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모르겠다.(예전에는 의친왕이 공립협회 주필이었다며 독립지사의 공로를 훔치더니, 이젠 조모의 업적을 가로채 부친에 얹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의친왕비 기증품 중 2건, 즉 의왕책봉의궤와 의왕 원유관이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이는 문화유산 기록의 문제이기도 하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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