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라는 역사적인 전환기에 부딪혀 궁궐을 쫓겨나와 생활고라는 무자비한 질곡 속에 허덕이고 있는 이왕 후예들의 신산한 몰락 과정을 말하는 호개의 자료로서 소위 구왕궁을 팔아먹었다는 왕족 이강공의 육남(이곤 34세) 씨의 오늘에 이른 생활 기록을 소개해 보자.
이곤(일명 이명길) 씨는 4253년(1920년) 11월 4일 이강공의 육남으로서 모친 김씨(이강공의 삼첩)의 몸에서 출생한 후 8세 시에 일본에 도항하여 동경 입회소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사립 입정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에서 중퇴하였다고 한다.
4271년(1938년) 8월에 귀국하여 시내 종로구 견지동85 사동궁에 거주 시 충청남도 논산군 구자면 금곡리 윤항중 씨의 이녀인 윤옥순(당시23, 이곤 25)씨와 결혼하고 8.15. 해방 2년 후인 4280년(1947년) 봄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형 이수길 씨 집에서 동거하다가 동년 가능 다시 사동궁에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6.25. 사변이 돌발하여 남하치 못하고 서울에서 북한 괴뢰군들에게 갖은 고통을 받다가 9.28. 이후에 부산에 피난하였다고 하는 바 현재의 가족은 부친 이강공(77세), 모친 김씨(70세), 윤옥순(32세), 장녀 이양(8세), 차녀 이홍(6세)의 6명 가족이라고 하며 양친은 부산 동래에 은거하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곤 씨가 이왕궁소유재산을 사기 매도하게 된 동기를 공판정에서의 진술한 바에 의하면 원래 이왕족으로 해방 이후 정부에서 보조금이 근소하며 창경원 등의 수입에서 세금을 납부하고 나머지 수입금으로 생활을 유지하게 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생활상태는 비참할 정도로 곤란한 지경이었으므로 부친의 생활 대책을 강구하는 한편 생활비에 충당하려고 하였던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편 동사건에 대한 경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곤씨는 84년(1951년) 11월 부산진에서 “이강, 이병주”라는 인인(인감증명)과 “구왕궁재산임시관리위원장 이병주”라는 고무인과 “구왕궁재산임시관리위원장지인” 등을 위조한 후 85년 11월 부산 모 다방에서 동대문경찰서 박 경사의 소개로 시내 회현동 김지원(토건업자) 씨를 소개 받아 궁정동, 회현동, 명동 소재 대지 및 가옥을 매도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명동 1가 3번지 2대 40평, 명동 1가 4번지 대 1,033평 회현동 3가 5번지 대 580평” 등의 토지는 원래 이강공 소유이었던 바 4270년 2월 육남인 이곤에게 증여하였음을 증명한다는 부친 이강공의 증여 증서와 임시 관리위원장 이병주씨의 승인서 등을 위조한 후 1월 25일 김지원 씨의 소개로 시내 청운동 정규성 씨에게 2억 4810만원에 매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 [한예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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