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 권학] 일본 외무대신이 대한에 주차한 일본공사에게 훈령을 내렸다. 한국 황족 의화군께서 명치28년(1895)부터 일본(본방)에 유학 한지 4년이 되었으나 학업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본 대신이 깊이 유감하는 바이다. 본 대신이 동궁同宮을 친히 뵈옵고 말씀 하기를, 일찍 본국에서 떠나신 후로 지금 까지 본방과 혹 미국에 유학하신지 4년이나 되었건만 학업을 성취하지 못하니 동궁은 물론 하고 대한제국 조정(한정韓廷)을 위해 개탄스러운 바, 앞으로는 한층 분발하여 열심히 수업할 뜻으로 권면하자, 동궁께서는 깊이 깨달아 았으니, 앞으로는 본 대신의 권고한 대로 학업에 힘쓰겠으니 도움을 부탁한다고 했다. 본 대신은 적당한 교사를 뽑아 항상 동궁의 곁에 있어 가르치게 하고 또 본 대신이 스스로 감독이 되어 유학하시는 효과를 있게 하려 한다. 그러나 일본(본방)과 미국서 유학 하는 중에 본국서 학자금을 매양 늦게 보내줘 빚을 많이 졌다 하니 이제 부터는 동궁 학자금을 적어도 5,000원으로 확정 하여 두 달 혹 석 달씩 미리 지체 말고 보내게 하되 급히 한국 정부에 교섭 하여 협정 하라 한 고로 일본공사가 대한제국 외부에 조회하고 그 학자금 보낼 방법을 답장 조회해달라고 하였다더라.[독립신문(獨立新聞) 1899.3.7.]
그럼, 의친왕 학자금 5,000원은? 어느 정도?
[박물의 청구] 프랑스(法國) 만국박람회萬國博物會 담당 민병석씨閔丙奭氏가 청구서를 농상공부에 보냈다더라. 프랑스 수도 파리에 우리 나라의 박물을 수송하는데 드는 비용 5,000원을 본년도 예산 중 지출로 청구하였다더라. [황성신문(皇城新聞), 1899.1.14.]
[제일 큰 정무] 대광통교는 서울(장안)에 제일 중앙대로라, 내외국 관민과 말, 수레가 밤낮 내왕 하는 것은 어찌 다만 천만으로 헤아리리요. 이 다리뿐 아니라 서울 각 처에 돌다리가 무너지고 상한 곳이 많아 사람과 우마가 편리하게 내왕 할 수 없는 데가 많으니 누구라도 안타깝게 여길터, 금년 총 예산표 세출 임시부에 내부 소관으로 제1관 준천치도 석축 석교비 35,000원을 마련한 가운데 제1항 (청계천) 준천비가 2,000원이고 제2항 치도비가 30,000원이고 제3항 석축과 및 석교비가 3,000원인즉 해당 관원은 혹 살피지 못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한다더라 [독립신문(獨立新聞) 1899.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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