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북위의 도용 본문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실에는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무덤에 부장했던 도용(인형)이 전시되어 있다. 여러 도용 가운데 요즘 미의 기준에 가장 충실한 얼굴형을 가진 것이 북위(北魏)의 것이다. 북위 도용은 모두 세 개로 하나는 갑옷을 입은 무사고, 다른 두 개는 문관이다. 문관은 각기 붉은색 도포와 백색 도포를 입었는데 유심히 살펴보면 서로 옷깃의 방향이 다르다.
‘서경(書經)’에 ‘좌임(左衽)한 사방의 오랑캐’라는 표현이 나온 이후 옷섶의 방향은 중국과 이민족을 나누는 지표가 되었다. 공자도 춘추시대의 관중(管仲)이 제나라의 환공(桓公)을 도와 이민족의 침입을 물리친 일을 두고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좌임을 했을 것’이라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옛 중국인에게 옷을 여미는 방식은 자신과 이민족을 구분하는 잣대로 ‘좌임’은 풀어헤친 머리를 뜻하는 ‘피발(被髮)’과 더불어 이민족을 멸시하는 호칭이 되었다.
*좌임과 우임의 구분은 어느 쪽 안으로 들어간 옷깃으로 나뉜다. 즉 왼쪽 옷섶이 안쪽, 오른쪽 옷섶이 밖왔으면 좌임이다.
북위는 선비족 가운데서도 탁발부가 세운 나라로 오늘날 네이멍구와 만주 사이 흥안령 산록에서 성장하여 여러 세력을 물리치고 화북을 통일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전통에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더하여 제도를 일신했다. 중국의 황금시대로 국제적 문화를 뽐냈던 당나라도 실은 북위라는 토양에 힘입은 바가 크다. 북위는 자신들의 옷차림을 묵수하지도 또 중원의 옷차림으로 일변하지도 않았다. 이들에게 옷깃의 방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도용의 차림새에는 이런 북위 문화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홍대용(洪大容)은 ‘의산문답(毉山問答)’에서 실옹(實翁)의 입을 빌려 ‘도포의 위용이 좌임(左袵)의 편리함만 못하고 … 따스하게 입고 불에 익혀 먹으면서 유약한 것보다야 천막에 살며 유제품 먹고 강건한 것이 낫다’며 명나라가 쇠퇴한 연유를 여기서 찾았다. 뭐 하나가 마음에 안들면 모든 것이 다 싫다고 고작 옷매무새 하나가 비칭이 된 것이니, 하긴 요즘이라고 다를까 싶긴 하다.
'중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나라의 인디아나 존스 (0) | 2022.03.13 |
---|---|
실제 역사 속 포청천 (0) | 2022.03.12 |
측천무후, 당 종실의 씨를 말리다. (0) | 2022.02.21 |
당나라 장수 사숙방謝叔方 (0) | 2022.01.15 |
(CCTV 논평) 불장난하다 타죽는 꼴 玩火自焚 (0) | 2021.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