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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하던 서화가들의 작품공모전이었다.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1922년 시작되어 1944년까지 이어졌다. 일본의 관전과 달리 서예부가 있었다.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등용문 같은 역할을 했다. 이 대회는 심사위원 다수가 일본의 관전 출신으로 일본 미술이 조선 미술에 영향을 끼치는 장치가 되었다. 그러나 수상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재조선 일본인이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따라서 결과론적으로는 조선인 작가들이 일본 미술의 영향에 물들게 했지만, 실은 제전의 더 큰 목적은 민족(조선인과 일본인)이 아니라 지역(식민지와 본국)의 균질성에 있다고 생각한다.매일신보 1924년 5월 25일자에는 제3회 선전을 준비하며 작품을 옮기는 사진이 있..
현대일보 1946년 7월 12일자에 실린 기사다. 글을 쓴 이강국李康國(1906~1956?)은 양주 출신으로 1925년 보성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고유섭도 보성고등학교 졸업 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함께 지낸 시간만큼이나 친분도 돈독했던 듯하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학 중 공산주의 이론에 입문하고 1928년 중퇴해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철학과에 입학, 독일 공산당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귀국 후 파업을 주동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등에 참여 좌익의 목소리를 냈고, 결국 미군정 하에서 체포령이 떨어지자 월북했다.(이때 연인 김수임이 도움을 주었다.) 북한에서 외무국장, 조선인민군병원장, 조쏘항공사 사장 등을 역임..
조선화론집성은 우현 고유섭(1905~1944)이 조선시대 에서 회화 관련 기록을 간추려 모은 책이다. 저자 생전에는 간행되지 못하고 1965년 황수영이 유족으로부터 원고를 받아 등사 간행했으며, 1976년 경인문화사에서 등사본을 재인쇄하는 방식으로 중간했다. 전적을 일일이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절, 조선화론집성을 보고 원본 본 양 논문에 각주 단 사람도 많았던 듯하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조선화론집성의 오타를 찾아 여기 나온 걸 누가 어떻게 인용했는지 찾아내고 싶다. 번역이 대접 못받는다고 하지만(그래서인지 "이런 건 왜 번역 안해"라는 사람들, 저서는 내도 번역서는 안내더라.) 사료집성이야말로 공만 많이 들고 얻는 건 별로 없다. 그래서 한국미술사사료집성을 펴낸 진홍섭 선생이야말로 이 분야의 존경을 받아..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일기를 읽다. 01 1902년 (메이지35) 8월 18일 월요. 비 오전 8시 출발. 정오 경주에 도착했다. 군수는 대구에 가 부재중으로 수석 서기의 주선으로 영화루暎花樓에 숙박했다. 누각은 예부터 악부樂府가 있던 곳으로 지금도 옥피리玉笛를 보관하고 있다. 오직 말루抹樓와 작은방(小室) 2칸만 남았다. 4시경이 되어서야 날이 개었다. 바로 남문 종루의 대종(성덕대왕신종)을 조사했다. 밤에 월색이 청량하였다. 이날 일정은 3리 반이다. 8월 19일 화요 흐리고 비 물안개가 간신히 거쳤지만 하늘 또한 음울했고 비가 내렸다. 그래서 순교巡校를 데리고 오전 10시에 출발해 먼저 분황사의 구층탑을 보았다. 그리고 월성에 가서 빙고를 보고 내물왕, 미추왕 등의 무덤을 지나 첨성대를 보고 향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