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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꼭두각시 인형을 읊다 傀儡吟 刻木牽絲作老翁, 鷄皮鶴髮與眞同. 須臾弄罷寂無事, 還似人生一夢中. 나무를 깎고 실을 당겨 늙은이를 만드니 닭살이며 백발이 진짜 같구나. 한 바탕 놀이가 끝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해지니 그야말로 꿈같은 인생이로다. 당나라 현종(玄宗)이 읊은 시다. 현종 ‘개원(開元)의 성세’는 당의 절정기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천보(天寶) 14재(755) 안록산의 난의 발발하고 낙양과 장안의 방어에 실패하면서 자신은 애첩 양귀비와 제위를 잃고 나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음악과 가무, 예술과 예능을 두루 즐겼던 현종이기에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안사의 난 이전에 지었다면 징험일 것이오, 그 이후에 지었다면 절창이 아닐까 싶다.
이주는 오늘날의 하미이다. 태종 때 이오의 호인이 귀부하자 서이주를 설치했다.(630) 처음에는 기미주로 운영하다가 이주로 이름을 바꾸고 직할 주로 편재했다. 돈황 발견 천계원년 사주이주지지(沙州伊州地志)에 “보응연간(762~763) 토번에 함락되었다. 대중4년(860) 장의조가 수복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보응 원년 하서 제주는 여전히 건재했다. 아래 기록은 이주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 원광정은 하서 수장이다. 천보말년 이주자사가 되었다. 안록산의 난으로 서북변경의 수비병이 반란 진압에 투입되면서 하서, 농우의 군읍이 모두 토번에 함락되었다. 오직 광정 만이 수년간 이주를 지켰다. 외부로부터 구원이 당도하지 않자 오랑캐는 여러 가지를 내밀며 꾀어냈지만 그는 끝내 굽히지 않았고 부하들도 뜻을 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