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외국어대학교 반병률 교수는 논문 "상해 임시정부와 의친왕: 구황실 조항과 의친왕의 ‘탈국’ 사건을 중심으로" 국문 초록에서 “의친왕 이강 공은 항일의식이 강하여 항일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황실 인사로 한국인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던 인물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정작 의친왕의 행적을 보면 그랬을까 싶다. 반일의식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국치일 이전까지 그에게서 어떤 반일행적도 찾아볼 수 없다. 의친왕은 개인사 문제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매달렸으며, 일본 유학 중에 쓴 사채를 갚는 와중에는 고종을 속여 더 많은 돈을 받아냈다. 일본 기록은 일본에 호감이 있다고도 했다. 어쨌든 오늘 자료 역시 흥미로운 자료다. 이하 의화궁은 의친왕을 말한다. 황성신문 1908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