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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1월 황족 친목회는 이우李鍝 공 전하의 주최로 26일 오후 3시부터 시부야 도키와마츠(常盤松)의 어전에서 지치부노미야(秩父宮) 친왕과 왕비 양전하,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 친왕과 왕비 양전하를 필두로 각 황족 분들이 모여 해군종군작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를 초청해 “전장의 흙먼지를 줍다”는 제목으로 소강부대遡江部隊의 활약 관전담을 약 1시간에 걸쳐 청취, 마치고 다과회를 열어 이야기를 나누고 5시에 산회했다. (사진은 요시카와 에이지 씨)[경성일보 1938.11.27.] 이날 행사의 강연자인 요시카와 에이지는 20세기 일본의 대표적 통속소설 작가로 삼국지, 미야모토 무사시 등을 썼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종군작가로 활동했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이야기했다는 소강부대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부대'를..
조선왕실, 대한제국황실 가족들은 나라를 잃고도 호의호식했다. 이들은 일본황실의 왕공족으로 대우받았다. 달라진 것은 다스릴 나라, 부려 먹을 백성이 사라졌을 뿐이다. 예전 교과서에는 대한제국의 멸망을 ‘한일합방’이라고 표현했으나, 이제는 ‘국권피탈’이라고 쓴다. 일제강점기라는 표현도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합방’이라는 단어도 가려서 쓴 것이니 당시에는 ‘일한병합’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른 바 '일한병합'을 기념하여 일본은 여러 가지 기념물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인쇄물이었다. 사진첩, 팜플렛, 엽서 등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왕공족은 여기에 단골메뉴였다. 허울뿐이었던 제국 놀이는 채 20년도 유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던 황제 가족들은 기념물의 주인공이 되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피탈한 뒤로 여러 기념 행위를 이어갔다. “한국병합기념장韓國倂合記念章”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국병합기념장은 1912년 3월 28일 일본 천황의 칙령으로 제정되었다. 한국병합기념장은 단순한 기념 메달이 아니라 "한국병합"에 공이 있는 자들에게 주는 일종의 훈장이었다. 칙령이 반포되자 담당부서인 일본 내각 상훈국償勳局에서는 기념장의 디자인을 발표하고 제작에 착수했다. 지난달(3월) 28일 칙령으로써 한국병합기념장 제정의 건을 발표하였는데, 이 기장은 위 그림에 보이는 바와 같이 황동원형에 직경 1촌으로 상부에는 국수문(국화무늬)이오, 양측에는 오동 및 오얏의 꽃가지를 넣고 (또) 중앙 홍색 좌우 황색, 백색의 테두리가 있는 띠(綬)를 달았다. 이 기장은 한국 병합의 사업에 관여한 ..
서대문구 천연동의 금화초등학교 앞에는 3개의 표석이 있다. 하나는 중군영 터, 하나는 천연정 터, 하나는 청수관 터다. 표석 세 개만으로도 이곳에 많은 이야기가 서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럼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연못이 있던 자리금화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본디 연못이 있었다. 연못은 모화관 남쪽에 연못을 조성하라는 조선 태종의 지시에 따라 1408년에 판 것이다. 궁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지西池’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이 외에도 남대문 밖의 남지南池, 동대문 밖의 동지東池가 있었는데, 모두 연꽃이 만발했다. 그래서 그 해 어느 연못의 연꽃이 활짝 피는가에 따라 정권의 향방이 달라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서지의 연꽃이 활짝 피면 서인이, 남지의 연꽃이 활짝 피면 남인이 득세했다는. 또 ‘반송지..
화태청관영 해구신 신품 도착 정기를 보충하고 정력 강장에 신비로운 효과를 가진 전 세계에 유일한 고귀한 실탄 진품이외다. 구해서 복용하길 원하시는 분은 설명서를 요청하시면 무료 증정합니다. / 과연 백발백중 증명서 부산부 초량정 / 합자회사 대양무역사 大洋貿易社 / 전화 1-182번 / 계좌 부산7922번 [매일신보 1938.11.12.] 해구신이 무엇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정의했다. 해구-신(海狗腎): 물개의 음경과 고환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 보신 강정제로 쓴다. 해구신은 오래 전부터 강정제로 유명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로칠상五勞七傷, 신기가 쇠약해지거나 음위에 힘이 없거나 얼굴이 흙빛에 정기가 차거나, 남성의 정력이 쇠약해졌거나, 지나친 성생활로 성기가 피로해져 수척해진 것을..
탈모는 예나 지금이나 현대 의학의 난제 가운데 하나다. 원형 탈모 상담하러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대머리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고민이라고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웃음으로 승화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대학 다닐 때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친구는 "레닌, 트로츠키, 세상을 바꾼 이들은 모두 탈모인"이었다고 주장했으며, 또 어떤 선배는 전대협이 실은 "전국 대머리 연합회"의 줄임말이라고도 했다. 이런 농담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으니, 세기말 괴작 "이나중 탁구부"에서는 무지개가 "7명의 대머리 노인들이 나라가 정해주는 시간, 정해진 장소에 모여 만든 것"이라는 놀라운 학설을 던졌으며,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는 사기꾼..
명동지하도에서 올라와 줄지어 있는 먹거리 노점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왼편에 고풍스러운 건물 한 동이 있다. 국립극장 명동예술극장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메이지자(또는 명치좌明治座)’로 불렸던 영화관이다. 메이지자는 현재까지 도호(東寶), 도에이(東映)와 더불어 일본 삼대 영화사로 불리는 쇼치쿠(松竹)가 만든 영화관이다. 쇼치쿠는 1895년 공연장 영업을 시작해 1920년 쇼치쿠 키네마 합명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에는 제국활동사진주식회사를 세우고 1923년 오사카쇼치쿠자大阪松竹座, 1930년 도쿄극장(東京劇場) 등을 열었다. 이와 더불어 1930년대부터는 조선에 진출, 영화를 보급하는 한편 조선인 배우도 물색했다. 메이지자의 건축은 초대 극장장인 이시하라 료스케(石橋良介)가 ..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서울 구 미국문화원이다. 구 서울 미국문화원이라고 해야 하나 '구 서울'이 마음에 걸려 이리 지은 듯하다. 지하철로는 시청역(1,2호선) 또는 을지로입구역(2호선)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된다. 롯데호텔 차량 출입구 바로 맞은편에 있다. 이 건물은 본디 미쓰이물산(삼정물산三井物産) 경성지점 사옥이었다. 미쓰이물산은 메이지 시대 외국 상회가 독점했던 무역의 주도권을 일본이 되찾고자 1876년 설립했다. 면사방적기계와 면화를 수입하고 생사, 면사, 면포의 수출을 담당했다. 곧 일본 면사 수출의 절반을 다룰 정도로 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에도 발 빠르게 진출했다. (관삼출구官蔘出口) 객년 12월 27일 연태煙台에 향할 차를 인(천)항에서 출범한 창룡호蒼龍號가 인항해관창고(인천항..
젊은 사람, 독신자는 불가독!! 류테이 타네히코(유정종언) 작 “사랑의 검은 머릿결” 절본의 비서...이 책은 에도시대 염정소설의 대가, 타네히코의 대작인데, 남녀의 정사를 너무 노골적으로 쓰기 때문에 절본이 된 것을 모아 합본하여 함께 즐길 곳에 배포하니 한 번 열람하면 춘야농월(봄밤의 희미한 달)을 바라보는 황홀함과 같고 두 번 읽으면 몽중에 꿈꾸는 심사가 됩니다. 본서의 묘미와 쾌락을 남이 알지 못하게 맛보시오. 평범하고 조잡한 책이 아니외다. 사륙판 상자입. 미본. 정가 1원 70전, 특가 1원 40전에 할인함. 대금인환송료 2전, 전금주문송료 8전. 차제에 신문명을 기입한 주문자에 한하여 “나체미인사진” 1조 무료 증정 발행소 동경 마포구 부사견정 육번지 우편사서함 동경42457번 애문사서방 매..
일제강점기에도 성인물의 수요가 있었으니 신문에 광고도 나온다. 허나 이때도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통신 판매하고 구매자의 신상을 보호하는 장치를 두었다. 또 나름 광고에 대한 피드백도 얻고자 본지를 알게된 계기를 답해주면 서비스도 주었다. 인간의 욕망은 변함이 없으나 단지 기술이 부족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 이것하고 젊은 남녀가 기뻐하는 비밀 사진 젊은 남녀가 누구든지 보고 싶어 내심 갈망하는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대담 노골히 적나라한 미인 진화. 일견하면 무한한 취미가 있습니다. 크기가 십원 지폐 만함으로 한 조만 비장하시면 말할 수 없는 즐거움. 타점에 팔지 않는 진품(8매 1조) 대할인 / 이품 조합 금85전 즐거운 진(귀한) 사진 12매조(세트)젊은 남녀가 한 번 보면 무심중 빙그레 웃는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