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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칠세七世 구당서舊唐書 본기本紀에 “고조高祖는 양凉(서량) 무소왕武昭王 고暠의 7대손이다. 고는 흠歆을 낳고 흠은 중이重耳를 낳았다. 중이는 희熙를 낳고 희는 천석天錫을 낳았다. 황조皇祖의 휘는 호虎고 황고皇考의 휘는 병昞이다.”라고 했다. 신당서新唐書 본기에서는 “칠세조는 고暠이며 고는 흠을 낳았다.”고 했다. 천석 이하 바로 호를 낳았다고 하고 호는 병을 낳고 병은 고조를 낳았다 했으나 황조, 황고라고는 하지 않았다. 유구劉昫는 당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신당서 본기에선 다시 천석을 '천사天賜'로 고쳤다. 칠대조이든 칠세손이든 모두 자신에서부터 세는 것으로 순서대로 추산하면 고부터 병까지, 역으로 추산하면 병부터 고까지가 칠세다. *참고 이호李暠 – 이흠李歆 – 이중이李重耳 – 이희李熙 – 이천석李天錫..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는 당 현종 시대의 일화를 모은 책이다. 모두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당의 전성기 풍경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다. 개원開元, 천보天寶 상, 천보 하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서는 개원 편에 초반에 있는 이야기 몇 개를 번역 소개한다. *개원開元(713~741) / 천보天寶(742~756) ‘태평太平’ 글자가 있는 옥(玉有太平字) 개원원년(713) 궁중 안에 비가 내려 물이 흘러 땅이 패였다. 밤에 그 사이로 빛이 나서 숙위가 그 장소를 기억했다가 날이 밝자마자 상주했다. 주상이 그곳을 파보라 하니 보옥 하나가 나왔는데, 모양이 박(拍板: 악기) 같았다. 위에 옛 전서체로 “天下太平(천하태평)”이란 글자가 있었다. 군신들이 경하했고 내고에 넣어 두었다. 開元元年,..
추코문고中公文庫로 나온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1901~1995)의 “중국에서 배운다(中國に學ぶ)”다. 초판은 1986년 9월 10일이나 본 책은 1998년 2월 20일 7판(가격 699엔, 세별)이다. 겉표지 뒷면의 책소개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중국에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중국사학 분야일 것이다.”라는 깊은 인식에 기초해 중국의 사상, 역사, 민속, 인물 서적을 이야기하고 정치, 시사를 논한다. 나아가 우리가 중국에서 배울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오늘날 중국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시하는 명작 에세이 저자인 마야자키 이치사다는 일본의 중국 사학, 그 가운데서도 교토학파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학자다. 우리나라에서도 나가노 현 북부 이야마 시(飯山市)에서 태어났다. 1925년 교토..
북연의 두 번째 황제 풍발馮跋의 재기載記다. 북연의 창업주는 모용운慕容雲, 즉 고운高雲이었다. 고운은 측근에게 살해되었는데, 이때 자제도 함께 죽었다. 풍발은 반란 세력을 진압하고 황제에 즉위한 뒤, 모용운 정권을 고스란히, 국호까지 물려받았다. 풍발은 신도信都 사람으로 기록 상 한족漢族이었으나 이민족 국가를 인수했기 때문에 재기에 수록되었다. 그런데 고운은 후연後燕 모용씨 왕족들과 한 권에 입전된 반면, 풍발 이하 북연 군주는 서진西秦 걸복씨乞伏氏 뒤에 실렸다. 전, 후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진서) 고운의 북연을 인수한 풍발(전편) 북연의 두 번째 황제 풍발馮跋의 재기載記다. 북연의 창업주는 모용운慕容雲, 즉 고운高雲이었다. 고운은 측근에게 살해되었는데, 이때 자제도 함께 죽었다. 풍발은 반란..
고전 용어 가운데 '곡사'라는 단어가 있다. 나라 전체에 사면령을 내리는 것을 "대사大赦"라고 한다면 곡사는 특정 지역에 한하여 사면령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반란을 일으켰거나 새로 점령한 지역의 경우 기존 주민들까지 모두 죽일 수 없으므로 해당 지역에 이런 곡사를 반포한다. 이때 더러 반란 진압군, 또는 정벌군에게 상사의 의미로 본인 또는 친척 중 죄 지은 이들을 함께 사면해 주기도 한다. 그럼 뤼요우런呂友仁(1939~)의 글로 곡사의 내용을 살펴본다. "사원辭源은 곡사曲赦를 ‘특수한 사정으로 사면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예로 송서宋書 효무제기孝武帝紀 대명大明5년 ”옹주雍州를 곡사曲赦하였다“를 들었다. ... 사면赦免할 때는 모두 이유가 있다. 곡사曲赦만 그런 것이 아니다. 통감通鑑 권83 진晉 혜..
21년 사탐 동아시아사 3번 문제로 죽간 조정서(趙正書)가 나왔습니다. 죽간(竹簡)은 ‘대나무에 쓴 글’이라는 뜻으로, 종이가 없던 시절 비단과 더불어 문자를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얇은 대나무 가지를 다듬어 글을 쓰고 실로 엮어문서나 책을 만듭니다. 후한대 종이가 발명되고 널리 퍼지기 전까지 대부분의 책은 이 죽간이었습니다. 한자 ‘책(冊)’도 실은 죽간을 엮은 모양에서 기원했죠. 그러나 죽간은 오래 보관할 수 없었고 나중에 모두 종이책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최근 죽간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가 고고학 발굴로 땅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일단 문제에 죽간이 나오면, 전국시대, 진나라, 한나라, 삼국(오)나라, 네 시대 가운데 하나라고 유추하면 됩니다. 위의 문제는 이미 “중국 최초로 황제 칭호를 사용..
사숙방(謝叔方)은 옹주(雍州) 만년인(萬年人)이다. 처음에 소랄왕(巢剌王) 이원길(李元吉)을 따라 토벌에 참전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워 원길이 굴질직부좌군기(屈咥直府左軍騎)에 임명했다. 태종(太宗)이 은태자(隱太子: 이건성)와 원길을 현무문(玄武門)에서 처단하자 숙방(叔方)이 부병(府兵)을 이끌고 풍립(馮立)과 함께 북궐(北闕) 아래서 맞서 싸워 경군홍(敬君弘)과 여세형(呂世衡)을 죽였다. 태종의 군대가 주춤하자 진부호군위(秦府護軍尉) 지경덕(遲敬德: 울지경덕)이 원길의 머리를 가져와 보여주자 숙방(叔方)이 말에서 내려 곡하고 달아났다. 이튿날 나와서 자수하자 태종은 ‘의사(義士)로다!’라며 풀어주라 명했다. 서·이 이주자사(西·伊二州刺史)로 일하며 변진(邊鎭)을 잘 다스려 호융(胡戎)이 사랑하고 공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