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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신라와 당은 오랜 시간 사절을 주고받았다. 당시 바다를 건너 사신으로 간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삼국사기에는 바다를 건너오다 사고를 당한 사신 이야기도 나온다. 당나라 사신 가운데 처음 이름을 올린 사람이 주자사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다. "48년(626) 가을 7월에 당唐이 사신을 보내 조공朝貢했다. 당 고조高祖가 주자사朱子奢를 보내 고구려와 서로 화친할 것을 권유하는 조서를 내렸다." 당나라 사신들의 이름은 종종 언급되나 구당서나 신당서 열전에 입전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주자사는 유학전儒學傳에 실려있다. 이는 그만큼 동시대 그의 학문이나 글솜씨가 인정받았던 것을 의미한다. 그럼 그의 열전을 옮겨 본다. (*밑줄은 번역에 자신 없는 부분이니, 언제든지 댓..
아사나사이는 동돌궐 출신으로 이민족 때려잡는 이민족 장수로 열혈 활약했다. 당에 항복한 이후, 중앙아시아의 고창, 구자, 언기, 그리고 동아시아의 고구려까지, 그리고 그 결과 태종의 무덤에 배장되기도 하였다. 그는 태종이 죽었을 때 따라죽겠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흔히 중앙아시아의 코미타투스(Comitatus: 게르만 종사, 주군과 함께 살며, 전리품을 나누고, 죽을 때도 따라죽는 충성 끝판왕 집단 /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나옴.)의 일례로 곧잘 언급된다. 또한 고구려 원정에서 싸우던 중 화살을 맞았으나 화살을 뽑고 다시 전장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는 전래 설화에 안시성 공격하다 당 태종이 눈에 화살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생기게 된 된 여러 실마리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신당서에는 여러 이민족 장수들의 일..
사숙방(謝叔方)은 옹주(雍州) 만년인(萬年人)이다. 처음에 소랄왕(巢剌王) 이원길(李元吉)을 따라 토벌에 참전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워 원길이 굴질직부좌군기(屈咥直府左軍騎)에 임명했다. 태종(太宗)이 은태자(隱太子: 이건성)와 원길을 현무문(玄武門)에서 처단하자 숙방(叔方)이 부병(府兵)을 이끌고 풍립(馮立)과 함께 북궐(北闕) 아래서 맞서 싸워 경군홍(敬君弘)과 여세형(呂世衡)을 죽였다. 태종의 군대가 주춤하자 진부호군위(秦府護軍尉) 지경덕(遲敬德: 울지경덕)이 원길의 머리를 가져와 보여주자 숙방(叔方)이 말에서 내려 곡하고 달아났다. 이튿날 나와서 자수하자 태종은 ‘의사(義士)로다!’라며 풀어주라 명했다. 서·이 이주자사(西·伊二州刺史)로 일하며 변진(邊鎭)을 잘 다스려 호융(胡戎)이 사랑하고 공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