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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경술국치 이후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 황실 아래로 편입되었다. 고종은 이태왕을, 순종은 이왕을, 그리고 이하 일가는 대한제국 황제의 친족관계, 구 지위에 따라 공 이하 작위를 받았다. 의친왕은 여러 서예 작품을 남기며 말미 관지에 "춘암 이강", "이강공", "의왕 이강" 등이라고 자신을 밝혔다. 이중 "의왕"은 대한제국 시대의 봉작이었던 만큼, 더러 그 자체로 항일이나 저항, 또는 대한제국의 회복 등의 의미가 담겼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어 소개한다. 효덕전의 망제, 이왕 전하 어친행, 의친왕 전하께도지난 24일은 음력으로 2월 15일이며 또한 고종 태황제의 부묘 길일은 음력으로 21일임으로 별다례別茶禮는 다시 받들지 못하시겠음으로 작일 오전 11시에 창덕궁 효..
의친왕 이강은 상해 임시정부의 망명 시도로 대한제국의 여타 다른 황족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시도를 제외하고 그의 독립운동은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음주벽이나 축첩으로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윤치호 역시 일기에서 상해 임시정부에서 의친왕을 모셔가도 별반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매스미디어 등에서 고종, 명성황후, 덕혜옹주 등을 독립의 아이콘으로 그려 내면서 마치 이것이 사실인냥 포장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가 2024년 6월 27일 시청 여민관에서 개최한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이라는 학술행사도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집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https://ww..
#역사왜곡 #세종시 시리즈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는 2024년 6월 27일 세종특별자치시 시청 여민관에서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이라는 학술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세종시 부강면에 있는 두 채의 한옥(송암 김재식 고택, 홍판서댁 - 홍순형 고택, 전 유계화 가옥)을 독립운동 근거지로 조성하고자,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다. 여기에 발표한 사람은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과 사무총장, 그리고 전 국사편찬위원장이자 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이태진 등이었다. 이날 이태진은 "의친왕 이강과 송암 김재식의 유대 관계 추적 - 황제 직속 항일 정보기구 '제국익문사' 활동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글에 의친왕과 송암 김재식의 관계는 매우 적은 분량을 차지한다. 이날..
#역사왜곡 #세종시 시리즈세종시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는 부강면을 독립운동사적지로 추진하며 홍순형洪淳馨에 주목했다. 이에 앞서 시는 부강면의 고택을 기존의 '유계화 가옥'에서 ‘홍참판 댁’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지난 6월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이라는 황당한 행사를 거창하게 진행했다. 이 행사 자료집 원고에 따르면, 또 한 명의 제국익문사 요원, 여문 홍순형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세종 인물이 있는데, 바로 여문 홍순형이다.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으로 헌종비 효정왕후의 조카이다. 1874년 증광별시 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중략)… 제국익문사의 사기(차관급)이 되어 이호석 독리를 보필하는 한편, 세종 부강면 김재식 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별서를 짓게 된다. ..
"민족종교"라는 표현은 애초부터 세계종교, 즉 보편적 신앙이 될 수 없음을 내포한 말이다. 그렇기에 민족종교는 군소종교와 동의어가 될 수 밖에 없다. 그 가운데 일부는 교주의 철학과 교도들의 도덕성에 힘입어 성장한 것도 있지만 교주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고안한 사술에 불과한 것이 대부분이다. 무지몽매한 또는 정신나간 사람을 꾀여 그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바, 현대는 물론 일제강점기에도 "불법"이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전 뿌리를 둔 자칭 민족종교들은 "일제로부터 탄압 받았다" 운운하며, 마치 조선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것마냥 포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실은 현대 사회에서도 지탄받아 마땅한 사기극이다. 여기 아래 충청남도 예산 출신 윤자신이 문을 연 심령마찰소 역시 그 가운데 하..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일기를 읽다가 경술국치 전 며칠간을 살펴봤다. 온갖 야설에는 황제의 뜻이 아니었다는 둥의 이야기가 있지만, 나라의 멸망 앞에서 고종과 순종은 무사태평했다. 데라우치조차도 한 나라의 몰락에 "아아"라 했으나, 두 명의 암군은 평온 무사하게 자기 나라의 멸망을 지켜봤다. 또한 이완용 등 악질 친일파가 끝까지 협상에서 놓치 않았던 것은 국호와 "왕호"였다. 즉 이 병합의 주역들은 나라에는 역적이었지만 황실에겐 충신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내내 이왕가가 친일파들과 함께 쿵짝쿵짝했던 까닭을 보여준다. 이들 덕분에 황실 가족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 황실에 편입되어 왕공족으로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 고종이 독립운동을 했다거나, 또 순종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1910년 8월) 1..
이왕직李王職에 새로 생긴 주전과장主殿課長 박주빈朴冑彬 씨 이왕직에 장시사掌侍司가 없어지며 그 대신 주전과라는 것이 생겼다. 주전과는 그동안 장시사에서 맡아서 하던 내전 제반 사무를 맡아 보게 되었으니 새로히 과장이 된 분은 이왕가에 20여 년간 봉사하던 박주빈씨다. 47세에 비로소 과장이라니 기쁘기보다는 부끄럽소 하는 박과장의 낯에는 그래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실렸다. [사진은 20일 낮, 새 과장석에 앉은 박씨] (매일신보 1928.8.21.)대한제국 관원이력은 다음과 같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DB 참조) 본관 고령 생년월일 1882년 1월 7일 현주소 충청남도 홍주군 얼방면 효천리 학력 1888년 한문사숙漢文私塾 입학 1900년 한문漢文 휴학 1903년 3월 경성학당京城學堂 입..
#역사왜곡 #세종시 시리즈최근 세종시는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 학술행사회를 개최했다. 이 학술행사의 주요 요지 가운데 하나는 세종시에 거주했던 김재식의 독립운동 활동을 규명하는 것이며, 여기에 더해 세종시가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 근거지, 세종"을 주제로 사적지를 조성해 보겠다는 목적도 겸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는 세종특별자치시 최민호 시장이 개회사를 하고, 더불어 국가보훈부 이희완 차관, 광복회 이종찬 회장이 축사를 했다. 이번 행사는 당연히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었고, 향후 사적지 조성 사업까지 함께 한다면 더 많은 세금이 투입될 터다. 일제의 강점에서 일신을 다 바쳐 노력한 독립운동에는 존경을 표해야 한다. 그런 만큼 독립운동 서훈 지정 여부는 엄격해야 한다. 독립운동..
#역사왜곡 #세종시 시리즈요즘 지방자치단체를 보면, 동네 역사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지난 정부의 가야사 지원 방침엔 경주를 제외한 삼남이 모두 가야라고 외쳤고, 또 어떤 곳에서는 불과 몇 년 유지되었던 후백제를 기념하겠다며 고답적인 학술행사를 연달아 개최했다. 하지만 그런 행사, 기껏 예산 투입해서 해봐야 오히려 근본 없는 동네 밑천 드러내는 꼴일 뿐이다. 여기에 더해 사적지 조성해봐야 그 누구 찾아오지 않는 장소가 될 것이다. 어느 지역 어디나 사람의 숨결이 있었던 곳이고, 또 이야기도 풍성할 텐데, 이야기를 찾아낼 능력이 없으니 국가체(정치집단의 중심지)나 독립운동과 같은 기존 흐름에 얹어내려 하다 이 꼴을 못 면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세종시다. "독립운동 이력"은 존경의 대상이다. 따라서 검..
윤자형은 “대한제국기 때, 선전관 등을 역임하다가 을사조약 이후 의병투쟁을 전개하였고, 원각교를 창시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무신 · 의병장 · 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의 사적은 내내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88년 성신여자대학교 이현희 교수에 의해 발굴되었다. 자료는 칙서와 칙명 2건인데, 칙서는 잘 보이지 않아 패스하고 칙명을 읽어보았다. 윤자형 칙명의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勅命 칙명 正二品嘉義大夫尹滋亨 정이품 가의대부 윤자형 爲義兵大將兼湖南三道 위 의병대장 겸 호남삼도 陸軍大都督者 육군대도독자 開國五百十七年七月十日 개국오백십칠년 칠월 십일 (勅命之寶) (칙명지보 날인) 이 자료를 보고 몇 가지 의문이 들어 부기한다. 1. 가의대부는 문산계 정2품이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