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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 전몰자 이우 공 추도사

이우는 이강의 차남으로 이희의 양자가 되어 운현궁의 가계를 계승했다. 그는 왕공족의 일원으로 일본 육군 장교로의 길을 밟았다. (이는 당시 공가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경로였다.) 장교로 임관한 뒤로 만주 시찰, 또는 도리이(鳥居) 부대에 배속 화북 전선에 참전하였으나 공가의 일원이었던 만큼 전선으로 내몰리지 않고 대부분의 기간을 일본 내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1945년 6월 중좌로 진급해 히로시마에 배속되어 근무하던 중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사망했다. 이하 1945년 8월 13일 광복을 이틀 앞두고 게재된 추도사다. 불멸의 무훈 정려하신 생전 군관민이 다 함께 삼가 애도하여 받드는 가운데 지난 8일 경성에 돌아오신 고 이우공 전하의 유해는 부내 운니정의 운현궁 노안당에 모시었는데 저택에는 애도하여 받드는 ..

이왕가 사람들 2025.08.10

(삼국지) 촉한 후주 유선을 평하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어릴 적 머리를 다쳐 백치 황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삼국지의 하얀 비단 같다는 평가는 맹자에 등장하는, 인간본성은 성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던 고자의 말을 연상케 한다. 혼란스럽긴 했지만 오나라의 황제들처럼 악행을 일삼진 않았으니, 나라 자체가 한계 상황이었던 까닭에 비판도 동정도 함께 받은 듯하다. 아래는 후주 유선에 대한 진수의 평과 배송지의 주다. 평하기를, 후주는 현명한 재상을 임명했을 때는 이치에 따르는 임금이었으나 환관에 미혹되었을 때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군주가 되었다. 전하는 말에 ‘흰색 비단은 한결같지 않으니 어떤 색으로 물들이느냐에 달린 것이다.’ 했으니 믿을 만하다. 예에 (다음) 왕위를 물려받았으면 이듬 해 개원한다고 했는데, 장무3년(223)에 건흥으로 바꾸었으니 그 옛..

오늘의 고전 2025.08.10

일본군 20사단 육군 중장 의친왕 이강, 육군대연습 참가

#의친왕 #일본제국 #육군장성상하이 망명 기도 실패 이후 일본 당국은 이강을 예의 주시했다. 이강은 신문 조서에서 이왕직의 푸대접과 일신의 곤란이 망명 시도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일본은 재발 방지를 위해 이강에게 지위를 주고, 일정 수준의 대접을 해주기로 결심했던 듯 하다. 그래서 병합 직후 부여한 일본군 계급 "육군중장"의 역할을 실제 수행하게끔 했다. 이강은 용산의 조선군 사령부로 출퇴근했다. 이는 자리를 부여해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또 한편에는 바로 옆에 두고 감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이강공이 일본행을 거부하다가 공위 은퇴 후 일본으로 끌려갔다고 하지만 아래 기사처럼 이미 그 전부터 일본에 출입했다. 그의 삶 전반을 돌아볼 때, 그리고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보낸 편지글에서도 ..

이왕가 사람들 2025.08.09

메이지 천황을 흠모한 황실 독립 운동가 의친왕 이강의 편지(수신자: 데라우치 총독)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사 데이터베이스인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독립운동가가 남긴 자료와 독립운동 관련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다. 올해 광복절은 광복 80주년이기에 더 뜻깊다. 오늘은 여기서 서비스하는 자료 중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가 모은 기록인 데라우치 문서 속 이강공(전 의친왕)의 편지를 소개한다. 의친왕은 3.1. 운동 직후 망명사건으로 '독립운동가'로 분식되어 있는데,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독립운동과는 영 딴판이다. 이 편지 역시 그 증거 가운데 하나다. 편지의 작성일자는 1914년 12월 12일, 수신자는 데라우치 마사타케다. 어떤 이들은 이강이 일본행을 극렬 반대했다고 하는데, 이 편지에서 그는 메이치 천황의 무덤도 참배하고 싶고, 또 일본에서 체재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그 ..

이왕가 사람들 2025.08.08

아베 미쓰이에 - 사이토 마코토 편지 속 이강공(의친왕)

아베 미쓰이에는 도쿠토미 소호의 최측근으로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스스로 조선광朝鮮狂으로 자부할 정도로 조선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했고 김윤식, 윤치호, 최린, 최남선, 오세창, 김성수, 방태영, 최린, 송진우 등 당시 조선 지식인들과도 폭 넓게 교류했다. 3.1. 운동 이후 사이토 마코토가 총독으로 부임하자 그는 비선 자문역을 수행했다. 아래 편지는 그가 도쿄에 있으며 사이토에게 보낸 편지다. 작성일자는 1930년 5월 7일로, 이강이 은거를 청원하고 일본에 체재하고 있을 때다. 아베는 이 편지의 절반을 이강공에 할애했다. 그는 이강공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이하 그의 편지를 소개한다. 이래로 폐하의 안부를 아뢰지 못한 채 지내왔음은, 아무쪼록 황공하고 송구스러울 따름이라 삼가 아룁니다. 평소..

이왕가 사람들 2025.08.05

(진서) 멍청이 황제, 진 혜제를 말하다.

사마의의 후손은 조씨의 권력을 탈취해 진을 건국한다. 진의 창업주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 중국을 재통일했지만 결국 똥멍청이 아들 사마충에게 제위를 물려줌으로써 진을 몰락의 길로 인도한다. 똥멍청이 황제로 중국사 전체에서 수위를 다투는 진혜제를 진서의 편자는 어떻게 평했는지 살펴본다. 사신(史臣)이 말한다. 재능 없는 자가 천자의 자리에 오르니 권력이 황제에서 나오지 않고 정치는 악당들에게 돌아갔다. 포사와 공숙이 더불어 흥했고 양후와 견융은 함께 움직였다. 옛날 단주는 못났고 난왕은 부채로 달아났다. (이렇듯) 그들의 흉악함은 (나라의) 흥망과 관계된 일이니 흙인형 허물어지듯 정으로 망했다. 찌는 듯한 더위로 가로막혀 음란한 소리 기록되지 않다가 (모든 것이 들통나) 비웃음 사자 (병)부를 써서 뒤집어 ..

오늘의 고전 2025.07.31

옥 이야기

중국문화에서 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문명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옥이라 부르는 것 가운데는 실제 옥이 아니라 광택이 나는 돌을 잘 다듬은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옥이다. 타이완 국립고궁박물원의 모나리자가 괜히 옥배추가 아닌 거다. 공자 역시도 옥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니, 아래 문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 군자가 옥을 귀하게 여기고 돌을 천하게 여겼던 것은 왜입니까? 옥은 드물고 돌은 흔하기 때문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흔하다고 돌을 천하게 여기고, 드물다고 옥을 귀하게 여긴 것이 아니다. 옛날 군자는 덕을 옥에 비유했다. 온유하면서 광택이 나는 것은 인仁이다. 치밀하면서 굳센 것은 지智다. 모나지만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은 의義다. (끈에..

중국 이야기 2025.07.28

(양서) 무제 소연을 평하다.

중국 남조 양나라 무제武帝 소연蕭衍(464~549)은 자字가 숙달叔達, 아명은 연아練兒로 양나라의 창업주다. 남제 황실과 같은 난릉 소씨蘭陵蕭氏 가문 출신으로,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상주시常州市, 당시 말릉秣陵에서 태어났다. 부친 소순지蕭順之는 제나라 고제高帝의 사촌동생으로 임상현후臨湘縣侯 단양윤丹陽尹을 역임했다. 소연은 남제 중흥 2년 황제였던 화제齊和帝로부터 선양을 받아 황제가 되었다. 즉위 이후 내치와 외치에 힘써 남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말년에 불교에 심취해 여러 차례 출가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고 국가 재정을 파탄에 빠뜨렸다. 결국 귀순한 동위의 장수 후경侯景이 난을 일으켜 나라는 쑥대밭이 되고 자신은 유폐되었다. 후경의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궁궐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오늘의 고전 2025.07.28

(사기) 태사공, 오제본기를 말하다.

오제五帝는 여러 학자로부터 칭송받았으니 이는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상서尙書』에는 그저 요堯 임금부터의 기록만이 실려 있다. 백가百家의 말 가운데는 황제黃帝를 언급한 것도 있으나, 문장이 우아하고 순박하지 못해 학자나 관료는 꺼리는 바다. 공자가 전한 바 가운데 재여宰予가 오제덕五帝德과 제계성帝繫姓을 물은 바 있으나 일부 유가儒家는 전하지 않았다.(【색은索隱】 오제덕과 제계성은 모두 대대례大戴禮와 공자가어孔子家語의 편명篇名이다. 둘은 모두 정식 경전이 아니다. 한나라 때 유가가 성인의 말씀이 아니라고 여겨 대개 전하여 학습하지 않았다.)내가 일찍이 서쪽으로는 공동空桐(【정의正義】 ‘내(余)’는 태사공太史公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嘗’은 일찍기를 말한다. 공동산空桐山은 원주原州 평고현平高縣 서쪽 1..

오늘의 고전 2025.07.27

고궁박물원 100년을 맞다.

베이징과 타이페이에 나뉘어 있는 고궁박물원이 올해 100년을 맞이한다. 베이징 고궁은 옛 장소 자금성에 그대로 남고 중화민국의 천도와 더불어 타이완으로 이전한 고궁박물원은 타이페이 동북쪽 사림구士林區 외쌍계 外雙溪에 세워졌다. 양쪽 모두 개관을 기념해 의미있는 전시와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베이징, 또는 타이페이를 가시는 분들은 절대 놓치지 마시기를, 신해혁명으로 청조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원세개와의 협상 과정에서 황실 우대 조치를 받아냄으로써 마지막 황제 부의와 그의 가족은 계속 자금성에서 시종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원세개 사후, 여러 군벌의 난립 속에 북경에서는 풍옥상 주도하에 정부조직이 설치되었다. 혼란 속에 청조의 복벽 시도가 이어지자 정부는 1924년 11월 ..

세상 둘러보기 202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