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타이베이에 왔을 때는 북문만 눈에 들어왔는데, 이번 타이완 여행에서도 시간이 나지 않아 남문만 보고 왔다. 남문의 이름은 여정문. 도로 한 중간에 있어 도무지 접근할 방법이 없으나 무단횡단으로 성문 권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일제강점기(타이완에서는 일치시기日治時期라고 한다) 타이완총독부는 타이베이 성 성벽을 철거하고 4개의 성문을 남겨 사적으로 지정했다. 타이베이 성문에 대해서는 사적조사보고(제이집)(타이완총독부 내무국, 1936.)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지하철 중정기념당역에서 도보 3분이니 중정기념당에 가시는 분들은 잠깐 가까이 가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타이베이성(臺北城)은 현재 타이베이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은 따다오청(大稻埕)과 남쪽의 위좡(雨庄)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은 단수이허(淡水河)에 접해 있으며, 현재는 대만 총독부 대만 군 사령부를 시작으로 여러 관청, 학교, 은행, 회사들이 완화(萬華)의 시가지에 위치해 있다. 동쪽은 다안(大安), 싼챠오(三橋) 등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시가지와 상업 활동이 번창하고, 전 섬(全島)에서 으뜸가는 대만의 중앙 수도이다.
그 연혁을 살펴보면, 메이지 7년(1874년) 모란사牡丹社 정벌 결과로 청나라 정부는 국방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고 흠차대신欽差大臣 션바오전(沈葆楨)의 건의에 따라 이곳에 타이베이부(臺北府)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지부知府 천싱쥐(陳星聚)는 지방의 신사 및 상인들과 협의하여 20만 량(兩)의 자금을 투입해 성곽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고, 광서 6년(1880년, 메이지 1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1882년 3월에 완공되었다.
자재는 모두 견고한 석재를 사용하였으며, 성벽은 사각형으로 동·서 벽은 각각 412장(丈), 남벽은 342장, 북벽은 340장이었고, 두께는 1장 2척, 높이는 2장이며, 상부에는 울퉁불퉁한 장벽을 두었고, 동서남북의 4대문 외에 남문의 서쪽에 소남문小南門을 추가로 두어 누문樓門을 세웠다. 성 밖에는 해자(壕)를 두르고 물을 통하게 하였다.
동문은 경복景福(또는 조정照正), 서문은 보성寳成, 남문은 여정麗正, 북문은 승은承恩, 소남문은 중희重熙라고 불렸다. 대만을 점령한 초기에는 도시 구획을 개정하여 먼저 사방의 성벽을 철거하고 현재의 3선 도로를 만들었으며, 서문은 일찍이 철거되었으나 고다마 총독(兒玉總督), 고토 장관(後藤長官) 등의 뜻에 따라 다른 4개의 문은 보존되었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성내에는 포정사아문布政使衙門, 무대아문撫臺衙門, 타이베이부서, 단수이현서, 고시장考棚, 문무묘文武廟, 성황묘城隍廟를 비롯, 가묘家廟 등 웅장한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전부 철거되었거나 이전되어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오직 앞서 언급한 4개의 문만이 남아 있으며, 쇼와 10년(1935년) 12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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