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서울역, 강우규 동상 본문
열차 타기 바빠서 대개는 부랴부랴 새로 지은 역사로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옛 역사는 그저 버스 창밖 또는 신역사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먼 발치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곳에 새로운 문화시설이 생겼다고 하지만, 종교인, 시위꾼, 노숙자들을 헤치고 그곳까지 발걸음을 내딛기에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문화역 서울 284는 서울로 7017 만큼이나 인기가 없다. 옛 역사 앞에는 한 손에 수류탄을 쥔 당당한 노인의 동상이 있다. 독립지사 강우규(姜宇奎, 1855~1920)다. 바로 이곳에서 조선의 3대 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날렸으나 실패, 붙잡히는 바람에 형장의 이슬로 순국했다. 조선총독부 일간지 매일신보는 사건 직후 한동안 이 사실을 보도하지 못했다. 신문에 실린 것은 한 달도 넘어 강우규가 체포되고 나서였다. 물론 조선총독부의 보도지침 때문일 터, 당시 예순 노인의 거사가 어찌나 조선총독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는지 미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그럼 이하 매일신보 1919년 10월 7일자 기사를 소개한다. 가족, 친구들과 여행을 떠날 때, 잠시 들려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건 어떨까.
투탄(폭탄을 던진) 진정(진짜) 범인 강우규 체포
지난 9월 17일에 시내 누하동에서 잡혀
지난 9월 2일 조선통치의 대명을 받들고 새로 도임한 사이토오 총독을 암살하려고 폭발탄을 던진 범인인 강우규(65세)는 지난 9월 17일 시내 누하동에서 본정 경찰서 경찰관의 손에 잡혀서 그 후 동서에서 취조 중이더니 이번에 검사국으로 넘겼더라.
범인의 본성
본시 완강한 배일파요, 조선 사정을 모르는 자.
폭발탄을 던진 범인 강우규는 당년 육십오 세의 노인으로 평안남도 덕천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글방에서 한문을 공부한 것 외에는 아무 학력이 없으며 중년에 예수교 장로 교회에 입교하여 지금까지 그 교를 믿는 중이며 삼십여 년 전에 함경남도 홍원군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거주하다가 그후 쭉 지금부터 십년 전에 북간도 도두구道頭溝로 이사하였다가 사년 전에 다시 지나 길림성 요하饒河로 이사하여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청년자제를 교육하며 한편으로는 예수교를 전도하였으며 해삼위 근방으로 돌아다니며 오로지 일본을 배척하는 사상을 고취하기로 일을 삼았으며 항상 과격한 조선인과 서로 교제하며 오랫동안 벽지에 있어서 조선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자이라.
범죄의 동기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던져서 이름을 드러내
금년 봄 삼월에 손병희 등이 조선 독립을 선언하고 소요를 일으키자 이에 응하여 사방에서 이어져 일어남에 강우규의 거주지 되는 길림성 요하饒河 부근에 있는 조선이 임의 독립된 줄로 믿었다가 그 일이 허사임을 알고 통분함을 맞이 아니 할 때에 당시 해삼위에서 거주하는 완고 노인들이 조직한 소위로 인단에서 이동휘李東輝의 부친되는 이발李撥 이하 7명이 대표자가 되어 조선으로 건너왔으나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다 경성 종로에서 제 목을 제손으로 찌르고 관헌에게 붙들린 후에 경찰서에서 독립운동이 무모함을 깨닫고 무사히 돌아감에 강우규는 이것은 관헌의 말을 듣고 마음이 변하였다하고 크게 분개하여 늙은 팔을 뽐내여 얼마 남지 아니한 생명을 한 번 던져서 이름을 천하에 드러내리라하고 그 기회를 엿보던 중 마침 장곡천(하세가와) 총독이 갈리어 간다는 말을 듣고 신 총독이 도임하는 때에 한 번 큰 일을 해보면 일이 만일 실패가 될지라도 이름은 세상에 드러나리라 하고 결심을 한 모양이더라.
입경한 경로
노령에서 폭탄을 사서 해삼위로 경성에 왔다.
강우규는 거주지 되는 길림성 요하와 그리 멀지 아니한 로서아령지 청룡이라 하는 곳에서 한 로서아 사람에게서 폭발탄 한 개를 사가지고 해삼위에서 기선을 타고 청진 성진을 지나 원산에 도착하여 기차로 경성에 들어와서 장사하는 사람과 한 데 섞여 여러 여관에서 숙박하면서 신총독이 도임하는 날을 기다린 모양이더라.
당시의 광경
구경꾼들에 섞여서 폭탄을 던지고 도망해
강우규는 지난 9월 2일 오후 5시에 신총독이 남대문에 도착하자 이보다 먼저 환영하는 사람과 구경꾼 틈에서 구경꾼인 체하고 미리 준비했던 폭발탄을 가지고 남대문역 귀빈실 현관에서 상거가 얼마 아니되는 인력거와 구경꾼이 늘어 선 곳에 가까이 서서 신문지에서 본 총독의 얼굴을 기억하고 신총독이 귀빈실에서 나와 마차를 타려고 하는 것을 보고 가졌던 폭발탄으로 총독을 겨누고 던졌으나 총독이 무사하였음을 보고 낙심천만하여 그곳에서 도망을 하여 잠시 경성 시내에 잠복하려고 있던 중 수염을 깎고 복색을 고치고 이름을 강녕일姜寧一이라고 가칭하고 이곳저곳으로 교묘히 피하여 다니다가 드디어 지난 9월 17일에 누하동에서 체포되어 본정 경찰서에서 취조중이더니 이번에 검사국으로 넘어갔다더라.
不眠不休(잠도 못자고 쉬지도 않고)의 공적
폭발탄을 던진 범인 강우규를 체포함에 대해 千葉(지바) 경기도 제삼부장은 말하여 가로되 이에 잡은 범인으로 말하면 경찰서에서 취조한 결과 진정한 범인으로 추측한 것이며 이를 체포함에는 경무국의 열심은 물론이오, 헌병대에서도 또한 응원을 하였으며 하급 경찰관들이 침식을 져버리고 활동한 결과이며 이에 재하여 오랫동안 신문에 게재함을 금지하였으나 이번에 이를 해제하며 이후로도 조사하는 필요상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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