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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현종 시대의 이야기

자불어 2024. 1. 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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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는 당 현종 시대의 일화를 모은 책이다. 모두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당의 전성기 풍경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다. 개원開元, 천보天寶 상, 천보 하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서는 개원 편에 초반에 있는 이야기 몇 개를 번역 소개한다.

*개원開元(713~741) / 천보天寶(742~756) 


‘태평太平’ 글자가 있는 옥(玉有太平字) 

개원원년(713) 궁중 안에 비가 내려 물이 흘러 땅이 패였다. 밤에 그 사이로 빛이 나서 숙위가 그 장소를 기억했다가 날이 밝자마자 상주했다. 주상이 그곳을 파보라 하니 보옥 하나가 나왔는데, 모양이 박(拍板: 악기) 같았다. 위에 옛 전서체로 “天下太平(천하태평)”이란 글자가 있었다. 군신들이 경하했고 내고에 넣어 두었다.
開元元年, 內中因雨過地潤微裂, 至夜有光. 宿衛者記其處所, 曉乃奏之. 上令鑿其地得寶玉一片如拍板樣, 上有古篆‘天下太平’字, 百僚稱賀, 收之內庫.

가마를 보내 학사를 부르다(步輦召學士)

명황(현종)이 편전에 있을 때 요원지姚元之(요숭姚崇)가 시무時務 논한 글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7월 15일 궂은비(苦雨) 그치지 않자 한 척 진창이 되었다. 주상이 시어侍御에게 가마(步輦)를 이고 학사를 불러오게 했다. 이때 원지는 한림학사로 안팎으로 모두 영예롭다 여겼다. 자고로 이리 급하게 현자를 찾은 군주치고 이런 경우는 없었다.
明皇在便殿, 甚思姚元之論時務. 七月十五日, 苦雨不止, 泥濘盈尺, 上令侍御者擡步輦召學士來.  時元之爲翰林學士, 中外榮之. 自古急賢待士帝王, 如此者未之有也.

현종이 보냈다는 가마 보연步輦 / 염립본, 보연도(부분), 북경 고궁박물원 소장



젓가락을 하사해 올곧음을 기리다(賜筯表直)

송경은 재상으로 조야의 인심이 그를 향했다. 봄을 맞아 궁중 연회(御宴)가 열리자 황제가 내신에게 명해 자신이 쓰던 금 젓가락을 송경에게 하사했다. (송경은) 비록 받긴 했지만 그 연유를 알지 못해 차마 감사 인사를 올릴 수 없었다. 황제가 말했다. “내가 준 것은 그대에게 주는 금이 아니라 경에게 주는 젓가락으로 경의 올곧음을 표창한 것이오.” 그제서야 송경이 전 아래로 찾아와 감사 인사를 올렸다.   
宋璟爲宰相, 朝野人心歸美焉. 時春御宴, 帝以所用金筋令内臣賜璟. 雖受所賜, 莫知其由, 未敢陳謝. 帝曰: “所賜之物非賜汝金, 蓋賜卿之筋, 表卿之直也.” 璟遂下殿拜謝.


등자를 부서뜨리고 채찍을 감추다(截鐙留鞭)

요원지가 처음 형주의 지방관이 되었는데, 3년이 지나 이임하던 날 지역의 백성과 관리가 울며 말머리를 꼭 붙잡고 길을 막아 못 가게 했다. 올라탄 말의 등자와 채찍은 백성들이 모두 부서뜨리고 감춰 사모하는 마음을 표했다. 새로 부임한 지방관이 그 사실을 상주하자 조서를 내려 미담을 기리고 중금 1천량을 하사했다.
姚元之初牧荆州三年受代日, 闔境民吏泣擁馬首, 遮道使不去. 所登之馬鞭鐙民皆截留之, 以表瞻戀. 新牧具其事奏之画, 詔褒美焉, 就賜中金一千兩. 


철면피(慙顏厚如甲)

진사 양광원楊光遠은 교만하고 허풍이 심해 안하무인으로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왕공의 집을 이리저리 놀러 다니고 권문세가의 집을 제집 오가듯 드나들며 만족하는 법이 없었고 더 제멋대로 행동해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더러 힘센 자들에게는 매질이나 치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절대 후회하는 법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 대부분은 그를 비루하게 여겨 양광원은 얼굴에 열 겹 철판을 깔았다고 했다.
進士楊光遠, 惟多矯飾, 不識忌諱. 遊謁王公之門, 干索權豪之族, 未嘗自足, 稍有不從, 便多誹謗, 常遭有勢撻辱, 略無改悔. 時人多鄙之, 皆云, 楊光遠慙顏厚如十重鐵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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