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고전

(사기) 태사공, 오제본기를 말하다.

자불어 2025. 7. 27. 20:28

오제五帝는 여러 학자로부터 칭송받았으니 이는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상서尙書』에는 그저 요堯 임금부터의 기록만이 실려 있다. 백가百家의 말 가운데는 황제黃帝를 언급한 것도 있으나, 문장이 우아하고 순박하지 못해 학자나 관료는 꺼리는 바다. 공자가 전한 바 가운데 재여宰予가 오제덕五帝德과 제계성帝繫姓을 물은 바 있으나 일부 유가儒家는 전하지 않았다.(【색은索隱】 오제덕과 제계성은 모두 대대례大戴禮와 공자가어孔子家語의 편명篇名이다. 둘은 모두 정식 경전이 아니다. 한나라 때 유가가 성인의 말씀이 아니라고 여겨 대개 전하여 학습하지 않았다.)
내가 일찍이 서쪽으로는 공동空桐(【정의正義】 ‘내(余)’는 태사공太史公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嘗’은 일찍기를 말한다. 공동산空桐山은 원주原州 평고현平高縣 서쪽 100리에 있고 황제黃帝가 광성자廣成子에게 도를 물었던 곳이다.)에 이르고 북으로는 탁록涿鹿(【정의】 탁록산涿鹿山은 위주媯州 동남쪽 50리로 산 사면에 탁록성涿鹿城이 있다. 즉 황제, 요, 순의 도읍이다.)을 지나며,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장강과 회수淮水를 여행했는데, 장로들은 모두 저마다 황제, 요, 순의 유적을 칭송했다. 풍속과 가르침은 제각각이었으나 종합해 보면 옛 문헌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색은】 ‘옛 문헌(古文)’은 제덕帝德, 제계帝系 두 택이다. 성인의 이야기에 가깝다.)
내가 춘추春秋국어國語를 살펴보니 오제덕五帝德과 제계帝繫 장을 두어 천명했는데(【색은】 태사공(사마천)은 『춘추』, 『국어』 등과 같은 고서를 두루 살피며 연구해 검증을 더할 수 있었기에 오제덕 등의 논설을 더욱 밝혀 장을 더 명백히 저술할 수 있었다.) 돌아보니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집해】서광徐廣이 말했다. “‘제(弟)’는 단지란 뜻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에 한두 번 보이는 게 아니다. 또한 좌사左思는 촉도부蜀都賦에서 ‘그저 호수 같다(弟如滇池)’고 했는데 잘 모르는 이들은 이것을 오자로 여겼다. 학자라면서 어찌 두루 살피지 않는가?” 【정의】‘고顧’는 ‘생각한다(念)’, 제弟는 ‘아울러(且)’란 뜻이다.) 태사공은 옛 문헌을 두루 탐구하고 정밀하게 고찰해 그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말을 널리 탐구하고 정밀하게 고찰하여, 그중에서도 사실로 드러난 말들을 가려 기록했다.(【색은】제덕帝德, 제계帝系에 나오는 것은 모두 허망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선별해 드러낸 내용들은 모두 허황되지 않고 믿을 만하다. 옛 문헌은 이미 중간중간 빠진 부분이 존재하지만,(【정의】고문상서古文尙書는 그 사이 결락된 것이 많지만 황제黃帝의 말은 없다.) 그 빠진 부분은 종종 다른 이야기에 보인다.(【색은 고전이 빼먹은 부분에는 연도도 있어 “빠진 부분이 존재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황제의 사적은 산일되어 때때로 다른 기록에 보이니 바로 제덕, 제계 등의 이야기다. 따라서 지금 황제 이래의 사건을 수집하고 보완했다는 것이다.) 학문을 좋아하고 심사 숙고해 마음으로 뜻을 익히지 못하고 얕은 식견과 좁은 견문으로는 이를 말하기 어렵다. 내가 순차를 논증하고 우아하고 정제된 이야기를 가려 뽑아 본기의 제일 첫 장에 둔다.(【정의】태사공이 고문 및 제자백가를 근거로 순차를 논증하고 이야기 중 전아한 것을 가려 뽑아 오제본기를 지었다. 사기 130편의 첫 장이다.)


學者多稱五帝, 尙矣. 尙書獨載堯以來而百家言黃帝, 其文不雅馴, 薦紳先生難言之. 孔子所傳宰予問五帝德及帝繫姓, 儒者或不傳.(【索隱】五帝德, 帝繫姓皆大戴禮及孔子家語篇名. 以二者皆非正經, 故漢時儒者以爲非聖人之言, 故多不傳學也.)
余嘗西至空桐(【正義】余, 太史公自稱也. 嘗, 曾也. 空桐山在原州平高縣西百里, 黃帝問道於廣成子處.), 北過涿鹿(【正義】涿鹿山在媯州東南五十里, 山側有涿鹿城, 即黃帝, 堯, 舜之都也.), 東漸於海, 南浮江淮矣, 至長老皆各往往稱黃帝, , 舜之處, 風教固殊焉, 總之不離古文者近是.([【索隱】古文即帝德, 帝系二書也. 近是聖人之說.)
予觀春秋, 國語, 其發明五帝德帝繫姓章矣,(【索隱】太史公言己以春秋、國語古書博加考驗, 益以發明五帝德等說甚章著也.) 顧弟弗深考.(【集解】徐廣曰: “弟, 但也. 史記、漢書見此者非一. 又左思蜀都賦曰 ‘弟如滇池’, 而不詳者多以爲字誤. 學者安可不博觀乎?” 【正義】顧, 念也. 弟, 且也.) 太史公言博考古文, 擇其言表見之不虛(【索隱】言帝德、帝系所有表見者皆不爲虛妄也.), 其所表見皆不虛. 書缺有閒矣,(【正義】言古文尙書缺失其閒多矣, 而無說黃帝之語.) 其軼乃時時見於他說. (【索隱】言古典殘缺有年載, 故曰「有閒」. 然皇帝遺事散軼, 乃時時旁見於他記說, 即帝德、帝系等說也. 故己今採案而備論黃帝已來事耳.) 非好學深思, 心知其意, 固難爲淺見寡聞道也. 余并論次, 擇其言尤雅者, 故著爲本紀書首. (【正義】太史公據古文并諸子百家論次, 擇其言語典雅者, 故著爲五帝本紀, 在史記百三十篇書之首.)
-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1, p.31.
 

사기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건희7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