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렐루야

옥진총담과 발해문자 실체는? - 박찬화 기자의 반론?

자불어 2025. 12. 30. 21:29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에게 토론을 요청했던 한문화타임즈의 박찬화 기자가 박종인 기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펼쳤다. 그럼 이하 그의 반론을 살펴보겠다.

1. '옥진총담'의 실체와 문헌적 가능성
논란이 된 부분은 태백일사의 가림다 문자 부분의 이맥의 부기다. 이맥은 “이태백전서 옥진총담에 이르기를,”이라고 했다. 여기에 박종인 기자는 이태백전서도, 옥진총담도 존재하지 않는 책이라고 했다. 박찬화는 '옥진(玉塵)'은 “구슬처럼 맑은 티끌”이라는 뜻으로, 문장이나 시를 미화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라고 했다. 아니다. 구슬처럼 맑은 티끌, 그런 티끌이 있는가? 어불성설이다. "옥진"은 “옥에 티”란 뜻이다. 이처럼 한자 해석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잘못된 해석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옥진총담이 이태백의 문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총담”이 붙는 책은 여러 글을 모았다는 의미다. 총담은 명칭 자체로 전통적 의미에서 누구의 “문집”이 될 수 없다. 박종인 기자도 지적했듯이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맥이 언급한 이태백전서도 옥진총담도 존재하지 않는 책이라는 점이다. 이태백전서를 이태백문집이라고 퉁칠 생각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책 이름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송시열의 문집은 우암집도 있고 송자대전도 있다. 두 책은 송시열의 글을 모은 것이지만 다른 책이다. 책 이름이라도 예전부터 있던 것이라면 중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유독 그곳에서만 보이는 책이 존재했을 있다는 주장은 근거 빈약의 동의어에 불과하다. 이는 박종인 기자의 주장대로 신채호의 착오를 바탕으로 계속 베꼈다는 것을 뜻한다.

2. 거란 주장의 시대적 모순
박찬화는 박상석 교수와 박종인 기자가 당 현종에게 국서를 보낸 주체가 발해가 아니라 거란이나 토번일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이는 앞뒤 다 잘라먹은 이야기다. (환단고기 신봉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박종인 기자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다시 살펴보자. 신채호는 옥진총담, 금고기관에서 발해 문자 이야기를 인용했다. 그러나 옥진총담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고 금고기관에는 등장한다. 그러나 금고기관은 17세기 작품이다. 반면 태백일사의 찬자라고 하는 이맥은 1455년에 태어나 1518년에 죽었다. 따라서 이맥은 금고기관를 볼 수 없었다. 시대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태백이 외국의 문자를 해석했다는 이야기는 나관중의 수당양조사전에 처음 등장한다.(역시 소설이다.) 나관중은 14~15세기 사람이므로 이맥보다 선행한다. 따라서 이맥이 수당양조사전을 봤을 수는 있다. 그러나 수당양조사전에서는 발해 사신이 아닌 거란 사신으로 나온다. 주장인 즉슨, 발해 사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이맥을 볼 수 없었다는 바로 그 말이다. (타인의 주장을 제대로 섭취할 줄도 모르는 것 역시 그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무슨 반론을 펼친다는 말인가?)
이런 소설에 역사적 고증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박찬화는 열심히 고증을 이어간다. 거란의 문자는 당시에 창제 전이었고, 토번은 당에 비해 약세였기에 위협을 느낄 이유가 없었고, 발해는 730년대 당과 몇 차례 전투로 군사적 우위를 점했다고. 여기에 굳이 일일이 논쟁하는 건 지면 낭비다. 그러나 이 이태백 이야기는 이태백이 발해의 국서를 해독해 무례함을 꾸짖고, 답서로 발해 국왕을 책망하는 조서를 작성해 상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러면 이 전체 이야기도 역사인가? 아니면 선별 취사해 문자만 쏙 뺄 것인가?
  
3. 발해 고유 문자의 실존 근거
박찬화는 박종인 기자의 주장을 "발해에 고유 문자가 없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으나, 이는 북한학계의 연구 성과와 유물 자료를 무시한 처사"라고 했다. 주체사상을 공식 통치이념으로 삼은 뒤 북학학계는 엉망이 되었다. 그들은 평양을 고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한다. 거기서 뭘 못하겠는가? 정효공주, 정혜공주 묘지는 발해 전성기의 유물인데 발해 문자는 흔적조차 볼 수 없다. 박찬화는 이 기록을 근거로 다른 나라에 보내는 문서에도 이용했다고 했다. 발해가 841년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가 남아있다.(함화11년 중대성첩 사본) 그러나 이 역시 한문이다. 여기서도 발해문자로 볼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또 그는 부거리 출토 토기에 발해 문자가 있는데, 이두나 구결의 원리를 바탕으로 만든 독자적 체계였다고 말한다. 그 부호가 조금이라도 해독 되던가? 그런데 이두나 구결과 같은 원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그럼 그 근거를 제시해 보라.(아무말 대잔치가 아니라면)

그는 마지막 결론에서 다시 발해문자의 존재를 말한다. “거란 문자가 920년에 창제되었음에도 훈민정음과 유사한 정방형 구조를 가진 것은, 거란이 멸망시킨 발해의 문자를 참고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이 발해 문자에 매달리는 것은 가림토문자 때문이다. 그들의 도식을 정리하면 “가림토문자 - ? - 발해문자 – 거란문자 – 한글”이다. 부거리 출토 토기 부호와 거란문자를 비교해 보라. 차이가 클 것이다. 그런데 그 흐름에서, 수천 년의 과정을 거쳤는데 출발점인 가림토문자와 끝에 있는 한글이 제일 흡사하다? 결국 그 계통을 엮어보려다 가림토문자가 한글을 베꼈다는 것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다. 

참고로 박찬화의 스승 이덕일은 옥진총담을 왕진총담이라고 읽었다. 판본에 따라 달리 전사되었다고 쉴드 치는데, 그냥 잘못읽었다고 하면 될 것을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둘러댄다. 옥편을 왕편으로 읽고도 맞다고 우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은 박찬화의 마지막 문장이다. 

“특정 논문의 견해만을 앞세워 실증적인 유물과 문헌 기록을 부정하는 박종인 기자의 위서론은 학문적 엄밀함이 결여되어 있다. 『환단고기』에 수록된 내용은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문자 창제의 역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이태백전서와 옥진총담, 발해 문자가 존재하는가? 무엇인지 실증적인 유물과 그 근거를 제시하라. 특정 인간, 이덕일의 견해만을 앞세워 실증적인 유물과 현전하는 문헌기록을 부정하는 자는 누구인가?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하라. "환빠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환단고기는 그냥 재미없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박종인의 ‘옥진총담’ 위서론에 대한 반론: 발해 고유 문자와 역사적 진실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는 지난 12월 22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환단고기』 태백일사가 위서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상석 교수의 논문을 인용해 '옥진총담(玉塵叢談)'이라는 서적이 실존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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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기관의 번역은 매일신보에도 연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