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단고기 신봉자들에게 강력한 적이 나타난 모양이다. 박종인 기자가 일필휘지로 글과 방송을 내보내며 이덕일을 논파하자 여기저기서 난리도 아니다. “친일”, “식민”이라는 클리세는 물론이고 “조선일보”란 타이틀을 걸어 매도하기도 한다.(반박할 능력이 못되는 자들이 궁색할 때 주로 쓰는 수법이다.) 당장 내놓으라는 옥진총담(왕진총담인가?)은 침묵한 채 다른 문제로 시선을 돌리려는 상투적 수법도 자주 등장한다. 각중에 정면 돌파의 깃발을 들고 장황한 글로 반박을 하는 기사도 몇 개 보인다.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로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의 기사가 있다. 작성자 오종홍 기자 역시 박종인 기자에게 토론을 제의했다고 한다. 아래 그의 글 일부를 인용한다.
박종인은 김윤경의 기고문에 나오는 ‘고려 광종 때’, ‘장유張儒’, ‘好事者호사자’ 글이 이시영의 감시만어와 태백일사에 똑같이 순서대로 나온다는 이유로 태백일사를 이유립이 위조하였다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태백일사와 감시만어에는 김윤경의 기고 글의 원형이 되는 기사가 나온다(接伴使著聞初避亂到吳越). 그리고 이 글의 원형은 유형원이 서기 1656년 내놓은 동국여지지에 나온다. 동국여지지의 해당 글은 다시 고려사절요에 나온다(戶部尙書 張延祐卒. 新羅末父儒避亂吳越, 習華語而還, 光宗累授客省, 每中國使至, 使儒儐接之.).
결국, 태백일사 옥진총담 이하 글의 원조는 고려사절요라는 이야기다.
오종홍, “박종인기자 고맙다, 태백일사 진짜다”,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26.1.1.), 링크는 아래
문제가 된 김윤경의 글은 다음과 같다.
이덕무李德懋의 청패록淸脾錄을 통하여 전하는 바를 보면 광종光宗때 사람 장유張儒(호號는 진산晉山 나중 현종顯宗때 호부상서戶部尙書)가 나라의 사명을 띠고 지나支那의 강남江南(오월전씨시대吳越錢氏時代)에 가 잇을 때에 일쯕 고려高麗에서 어느 호사자好事者가 그때 악부樂府의 한송정곡寒松亭曲을 瑟(거문고)의 밑에 새기어 바다에 흘리어 보낸 것이 그 곳에 표착漂着하엿는데 강남江南의 사람들이 이것을 보아도 알아낼 수 없음으로 이것을 장유張儒에게 가지고 온 고로 장유張儒는 곳 이를 한시漢詩로 번역하여 『月白寒松夜,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沙鷗』라 하엿다 하는 바 (지금도 그 조선朝鮮 말 시조가 전함) 한송정곡寒松亭曲의 원문은 고려고유高麗固有의 문자로 적은 것이엇음을 살필 수 잇습니다.(김윤경, 正音以前의 조선글, 이 논문은 朝鮮文字의 역사적 고찰 제2편, 동광23(1931.7.5.))
동광에서 김윤경이 인용한 청장관전서의 실제 원문은 다음과 같다.
고려 장연우는 흥덕현 사람이다. (고려) 현종 조에 청요관을 거쳐 관직이 호부상서까지 올랐다. 또 진산이라고 한다. 그때 악부로 한송정곡이 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이 곡을 거문거 바닥에 썼다. 거문고가 강남으로 떠내려갔는데 강남 사람이 그 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광종 때 진산이 사신이 되어 강남에 갔다. (주: 오월 전씨 때인 듯하다.) 강남 사람이 그 곡의 뜻을 물었다. 진산이 시를 지어 해석해 주기를, “달이 흰 한송정의 밤, 파가 잠근 경포의 가을, 슬피우는 소리 오가니 마침 갈매기 한 마리” 이 이야기는 고려 때로 국서를 방언으로 번역다. 신라 이두처럼 본조의 훈과 음을 쓴 것인지 고찰하기 어렵다.
高麗張延祐, 興德縣人. 顯宗朝踐歷華要, 官至戶部尙書. 又名晉山. 其時樂府。有寒松亭曲. 甞有人書此曲於瑟底, 瑟漂流至江南, 江南人未解其詞. 光宗時晉山奉使江南,(案似是吳越錢氏時.) 江南人問其曲意. 晉山作詩釋之曰, "月白寒松夜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沙𩿨" 案此說則高麗時, 別有國書以譯方言. 如新羅吏讀, 本朝訓音, 而未可考也.(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卷34 청패록淸脾錄 한송정곡寒松亭曲)
이 원문에는 호자자가 없다. "어떤 사람(有人)"이라고만 했다. 즉 "호사자"라는 단어는 김윤경이 번역하면서 고른 단어다. 그리고 거문고 뒤의 글을 해석한 사람은 장유가 아니라 장연우(장진산)다. 그러나 김윤경은 "장유(張儒)"의 글이라고 했다. 즉 김윤경의 기술과 청장관전서의 차이는 동시대 다수의 지식인이 그랬듯 직접 보지 않고 기억으로 기술하다가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오종홍은 이 글이 1656년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동국여지지의 글을 보자.
한송정寒松亭: 부 북쪽 15리에 있다. 동쪽으로 큰 바다에 닿아 있다. 예전에 천 년 된 무성한 솔숲이 있어 찬 그림자가 푸르게 드리워지므로 이렇게 이름하였다. 정자 곁에 차샘(茶泉), 돌아궁이(石竈), 돌절구(石臼)가 있는데, 바로 신라 때 술랑(述郞) 등 선인들이 노닐던 곳이다. / 악부樂府에 한송정곡寒松亭曲이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이 곡조가 비파 바닥에 쓰여져 있는 채로 떠다니다가 중국 강남江南 지방에 이르렀는데, 강남 사람들이 그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고려 광종光宗 때 장진산張晉山이 사신의 명을 받들고 송宋나라에 들어가자 강남 사람들이 그 가사에 대해 물으니, 장진산이 시를 지어 풀이하기를,
달 밝은 한송정 밤이요 / 月白寒松夜
물결 고요한 경포의 가을이라 / 波安鏡浦秋
슬피 울며 오고 가니 / 哀鳴來又去
신의 있는 갈매기 한 마리 / 有信一沙鷗
라고 하였다.” 한다.
寒松亭: 在府北十五里. 東臨大海, 舊有千歲深松, 寒影蒼蒼, 因以爲號. 亭畔有茶泉石竈石臼, 卽新羅述郞仙徒所遊處. / 樂府有寒松亭曲. 世傳此曲書於琴底, 漂至江南, 江南人未解其詞. 高麗光宗時, 張晉山奉使入宋, 江南人問之. 晉山作詩解之曰, “月白寒松夜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沙鷗”(동국여지지 권7 강원도 강릉대도호부)
동국여지지의 글은 이덕무의 글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유사하다. 여기서는 거문고 뒷면의 글을 해석해 준 사람을 장진산이라고 했다. 앞서 이덕무의 글에 장연우를 진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했으니 장진산은 장연우와 동일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호사자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이는 호사자가 김윤경이 쓴 번역어였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 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국여지지 역시 이맥 사후에 나온 글로, 그의 생몰년과 맞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자 오종홍은 이 글의 “원조”가 고려사절요라고 주장한다. 고려사절요라면 이맥도 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럼 고려사절요를 보자. 해당 내용은 고려사절요 장연우의 졸기다.(오종홍은 기사 서두에 큰 사진으로 올렸다.)
호부상서 장연우가 죽었다. 신라말 부친 유가 오월로 피난갔다가 중국어를 배워 돌아왔다. 광종 때 누차 객성 관직을 받았으며 중국 사신이 올 때마다 유를 시켜 접대하게 하였었다. 연우는 행정 사무에 능하여 중요한 관직을 역임하고 재간과 능력이 있다고 일컬어졌었다.
戶部尙書 張延祐卒. 新羅末父儒避亂吳越, 習華語而還, 光宗累授客省, 每中國使至, 使儒儐接之. 延祐長於吏事, 踐歷華顯, 以幹能稱. (고려사절요 권3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을묘6년(1015))
고려사절요의 내용은 앞서 두 기록과 전혀 다르다. 김윤경은 고려 문자의 존재 가능성을 언급하기 위해 거문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리고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와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서 중국에 사행가서 거문고 뒷면의 글씨를 해독한 사람은 장연우, 즉 장진산이라고 했다. 반면 고려사절요 어디에도 이 일화는 찾아볼 수 없다. 주요 키워드 거문고조차 안 나오는 고려사절요 장연우 졸기를 꺼내 오종홍은 이야기의 "원조"라고 내밀었다. 그는 이덕무가 "서기 11세기 고려현종 때 사람인 장연우가 갑자기 서기 10세기 고려광종 때로 환생하여 오월국에 간 것 처럼 써 놨다."고 하고" 박종인은 이런 뒤죽 박죽 허위의 청장관전서 해당 부분을 검증도 안하고 태백일사를 위서로 모는 도구로 활용하였다."고 했다. 장연우는 954년에 태어나 1015년에 죽었다. 즉 10세기 중엽에 태어나 11세기 초에 사망했다. 고려 광종은 949년에 즉위해 975년까지 오랜 기간 재위했다. 즉 장연우는 광종 때 태어나 현종 때 죽었다. 오종홍은 장연우의 생몰년도, 광종의 재위 기간도 확인 안 하고, "환생" 운운 한 것이다. 이쯤 되면 검증 없이 아무 사료나 꺼내 검증의 도구로 활용한 것이 누구인지 명확해 진다. 특히나 김윤경이 거문고 일화를 꺼낸 이유나 일화의 주인공을 감안하면 이는 텍스트의 맥락조차 무시한 처사다. 이는 환단고기 신봉자들이 자주 쓰는 수법 가운데 하나다. 전혀 다른 사료를 제시해 퉁치고 넘어가는.
다시 말해 고려사절요는 이맥 생몰년과 맞추기 위해 장연우가 언급된 자료를 어찌 뒤지다 찾은 것이지만 오히려 김윤경이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알려줄 뿐, 이맥이 김윤경의 글을 베꼈다는 혐의를 거두는 데는 일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김윤경은 글에서 주인공을 장유라고 했다. 그러나 기록에 장유는 장연우의 아버지다. 김윤경은 청장관전서의 내용을 기억으로 옮기다 보니 그런 착오를 저지른 것이다. 베끼지 않고서야 이렇게 착오를 반복할 수 없다. 심지어 김윤경이 실수하기 한참 전인 16세기 인물 이맥이 아버지와 아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김윤경과 똑같은 착오를 범했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앞서 언급했던 김윤경의 번역어 "호사자"까지 그대로 차용하면서 말이다. 동일한 착오는 베낀 것이라는 증거이며, 번역어 차용은 표절이다. 차라리 세상에 타임머신이 존재한다고 우기는 사람이 더 순수하고 현명할지 모르겠다. "오종홍 기자 잘 읽었다. 태백일사, 가짜란다."
그리고 하나 더, 박종인 기자는 오종홍 기자와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 같은 테이블에서 마주하는 건, 같은 레벨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전혀 다른 사료를 갖고 와 같은 내용인냥 퉁치고 넘어가는 "우기기" 수준인 데다, "식민사학 밀정", "왜구" 같은 감정적 표현을 내 밷는 것은 그 자체로 학문하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허위에 찬 궤변"은 누가 일삼는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같은 이야기인양, 그 동네에서는 자료를 그리 대충 읽는지 모르겠지만 역사학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박종인기자 고맙다, 태백일사 진짜다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이재명 대통령이 불붙인 한단고기 진위논쟁“폐멸사학” 식민사학, 민족사학에 총공세박종인 조선일보 기자 태백일사 위서 맹공이유립이 동아일보, 동광 등 베꼈다고 궤변신채호 글, 감시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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