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 기자가 연속으로 환단고기를 비판하며 이덕일에게 토론을 청하자 이덕일은 변죽이나 울리는 영상 몇 개 던지더니 이제 "환단고기는 본질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슬그머니 퇴로를 찾고 있다. 그러나 박찬화, 오종홍 등 한문화타임즈,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 등 그간 유사역사학을 대변해온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은 연일 "반론"이라며 글을 올리고 있다. 물론 아래서 봤듯, 맞지 않는 내용을 들고와 우기는 모양새다. 여기 또 하나의 반론이 등장했으니 이매림의 " 박종인의 ‘송화강 위서론’에 나타난 기자정신의 빈곤을 비판하며"(한문화타임즈, 25.12.29./ 아래 링크)다.
그럼 그의 반론을 보자. 그는 먼저 "‘지명 업데이트’는 인류 고전 전수의 보편적 문법이다"라고 말하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지명을 ‘현대화’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관행"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경, 불경, 유가 사서와 같은 거대 경전들은 수천 년에 걸쳐 필사되고 전수되었기 때문에, '후대 편집자의 가필(Interpolation)' 흔적이 매우 풍부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성경, 불경, 유교경전에서 가필, 위작이 등장한다. 그가 예로든 부모은중경은 불교가 포교를 하며 중국의 효 사상을 끌어 안아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경전이다. 그래서 이 경전을 "위경僞經"이라고 말한다. 유교 경전에서 고문상서와 금문상서 논쟁은 무려 2천여 년이나 이어져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문상서는 위서임이 밝혀졌다. 오늘날 부모은중경이 인도에 실재했던 이야기라고 주장하거나 고문상서의 내용으로 은나라, 주나라의 역사를 복원하는 사람은 없다. 단, 위서의 성립 시기 그것이 왜 등장했는지 살피고 동시기 또는 그 이후 사회나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한다. 그것이 역사학이다. 그런 점에서 위서의 내용으로 과거사를 복원하겠다는 환단고기 맹신자들과 다르다.
여하튼 그는 상식적 내용에서 전제하고 송화강을 위한 변명을 시도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의 고구려 지명을 논하면서 ‘북한산군’을 설명하며 고려 시대 지명인 “지금의 양주”라고 적었다. 고구려 기록에 고려의 행정구역명이 등장하는 것은 전수 과정의 당연한 친절이다. 8세기에 편찬되었다 전하는 『일본서기』는 고대의 사건을 기록하면서 당시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율령제 지명으로 과거를 덧칠했다. 이는 고대 일본의 실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편찬 시기의 반영일 뿐이다."
맞는 말이다. 김부식은 신라 때 명칭을 부기하고 동시대 지명인 양주를 병기했다. 일본서기는 율령제 시대에 출간된 책이다. 그래서 동시기의 율령제 시대 지명이 등장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비판 받는 환단고기는 어떤까? 송화강이라는 지명은 편찬자 이암 시대의 지명이 아니다. 이암은 볼 수 없던 이암 사후에 등장한 지명이다. 즉 편찬 이후, 편자 입장에서 미래에 등장한 지명이다. 따라서 삼국사기나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편찬 시점의 지명과 다르다. 삼국사기나 일본서기는 이후 몇 백년이 전승되어 왔지만, 그 과정에서 편찬 시점에 기록한 원문의 지명을 조선시대나 에도시대, 근대 지명으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기본적으로 전승자들은 원문을 충실히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주석을 달아 부기하지 환단고기처럼 원문을 바꾸지 않는다.
한문으로 쓰여진 모든 역사서에 편찬 당시도 아닌, 미래의 지명이 원문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 제시해 보라.
그는 "지명의 시차(Anachronism)는 고대사서에서 오히려 흔히 발견되는 편집의 흔적"이라고 했지만 그런 경우는 없다. 삼국사기나 일본서기의 지명(편찬시점)은 환단고기의 송화강(편찬이후 시점)과는 그 예가 확연히 다르다. 환단고기 신봉자들이 "비판" 운운할 때 자주 써 먹는, 비슷하지도 않은 예를 찾아 들고 우기기의 전형이다. 반박을 하려면 소위 "고전 전수의 문법"에 맞는 예시, 즉 편찬자 기준 미래 시점의 지명이 원문에 등장하는 예를 찾아 제시하라.
환단고기 비판에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확증편향 운운한다. 수준 떨어진 판타지로 점철된 고대사를 설정해 놓고 믿어라, 이걸 연구해야지 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확증편향" 아닌가?
박종인의 ‘송화강 위서론’에 나타난 기자정신의 빈곤을 비판하며 - 한韓문화타임즈
지명(地名)이라는 ‘옷’으로 본질을 재단할 수 있는가?글 : 이매림 (매림역사TV) 최근 박종인 기자가 『환단고기』, 특히 이암이 저술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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