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25

장충단공원의 비석, 장충단비 해석

현재 장충단 공원 앞의 비석, 즉 장충단비는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로 1900년 장충단을 건립할 때 세운 것이다. 앞은 황태자(훗날의 순종)이 쓰고 뒤의 본문은 1905년 을사늑약 후 순국한 민영환이 썼다. 아래는 그 번역문과 원문이다. [앞] 예필(황태자 글씨) 장충단 [뒤]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는 자질이 성인을 능가하고 운수는 중흥을 맞이해 커다란 반석을 다지고 위기를 경계하셨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 더러 어려움이 닥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으니 갑오년, 을미년의 사변이 있었다. 무신武臣으로 난에 몸을 던져 목숨을 바친 자 많았으니, 슬프도다! 그 굳건함은 눈과 서리에도 당당하며 그 명성(名節)은 해와 별처럼 빛나니 영원토록 제향을 올리고 변치 않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터, 이에 성상께서 특별히 포충..

세상 둘러보기 2024.01.14

광화문 비각: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3)

3. 끝내 열리지 못한 행사 즉위 40주년 기념식 10월 18일을 얼마 앞두지 않은 10월 4일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고종실록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장예원 경 서리(掌禮院卿署理) 이용선(李容善)이 아뢰기를, "왕위에 오른 40돌 경축 의식을 음력 계묘년(1903) 4월 4일로 날을 받아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승정원일기는 조금 더 자세하다. 의정부 의정 윤용선이 삼가 말씀드립니다. 어극 40년 칭경예식을 이듬해 좋은 날로 잡아 거행하도록 조서를 내리심이 어떠하십니까. 장예원에 명하여 다시 날짜를 선정해 거행하겠다는 뜻을 전하겠사옵니다. 상주한 대로 하라. 장예원경 서리, 장예원 소경 이용선이 상주합니다. 의정부 주본에 의거하여 어극 40년 칭경예식을 다시 날자를 선..

세상 둘러보기 2021.07.30

광화문 비각: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2)

2. 잔치에 진심인 고종 1902년 4월 24일 고종은 조칙(詔勅)을 내려 10월 18일(陰9.17.)에 경운궁(慶運宮)에서 칭경예식을 거행하겠다며 신료들에게 의식 및 절차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였다. 약 3개월 뒤인, 7월 20일 의정부 의정 윤용선은 고종의 조칙에 대한 회답으로 의식 및 세부 사항을 보고하였다. 공식적인 "잔치의 서막"이었다. 고종39년(1902) 7월 20일(양력) 의정부 의정 윤용선이, ‘어극(御極) 40년을 칭경(稱慶)하는 예식을 참작하고 의논해서 마련하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신들이 정부(政府)에 일제히 모여 자세히 상의해서 의정(議定)한 내용을 별단(別單)에 써 들입니다.’라고 상주(上奏)하니, 윤허하였다. 【별단 1. 올해 10월 18일 대황제 폐하(大皇帝陛下)의 즉..

세상 둘러보기 2021.07.28

광화문 비각: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1)

역사 마켓팅으로 새롭게 태어난 "대한제국", 그 실제를 들여다 보면 고구마도 이런 고구마가 없다. 드라마, 뮤지컬에서의 모습과 달리 고종은 자신을 잘해보겠다는 마음은 있어도 나라를 잘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 대표적 증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와 비각이다. 교보문고 옆에 딱 달라붙어있어 지나가는 사람은 많아도 대개 그저 지나칠 뿐 유심히 들여다 보는 이는 별로 없다. 그럼 이 비석이 섰던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 그날을 돌아본다. 1. 고종 잔치를 결심하다. 1901년 12월 22일 동지, 훗날 순종이 될 황태자는 상소를 올렸다. “신자(臣子)가 군부(君父)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복록이 그치지 않고 장수하는 것뿐입니다. 때문에 나라의 경사는 그 일에 ..

세상 둘러보기 2021.07.27

대한제국? 대한국? 정식 국호는?

'대한제국'은 성공한 역사 마케팅 중 하나다. 실체에 접근하기보다는 격동의 근대에 우리가 좀 잘했으면 하는 심리에 (일본만 아니었으면) "잘했어", 또는 (계속 존속했더라면) "잘했을 거야"라는 애정이 더해져 매스미디어에는 곧잘 고종과 명성황후(민비)가 우국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드라마나 소설을 역사로 보지 말아야' 하는 건 당연지사고 또 두 부부에게서 나라 살릴 마음이 없었다고 단언하기 어려우나 신하와 백성들은 나라를 살리겠다고 목숨을 내던지는 판에 일본 황실의 일원이 되어 호의호식하거나 정권욕에 불타 일가친척을 요지에 앉히고 미신에 휘둘려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에 지나친 미화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각설하고, 조선이 독립을 선언하고 제국으로 국체를 바꾸고 국호도 바꾼 1897년 이후를 대한제국이라고..

이왕가 사람들 2021.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