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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의친왕은 여성편력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도 여성과의 염문설에 그 때문에 미국인 청년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후궁과 첩을 구분하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부인 1인, 후궁 7인, 첩 8인이라고...(기준을 아는 분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군주제 시대에는 달리 봐야 한다"라고. 하지만 "근대"다. 근대에는 그것을 "축첩(쌓을 축, 첩 첩)"이라고 부른다. 의친왕은 일제강점기 막판까지 후궁인지 첩인지 늘려나갔다. (일관성은 있다. 미국에서는 미국인과, 여기에 더해 기생까지 - 어떤 자료에는 일본인 첩도 있었다고.) 어떤 이는 의친왕이 축첩을 15세기 세종에 비교하며 왕실의 여성편력은 다르다고 강변한다. 어불성설이다. 세종의 시대를 우리는 중세, 또는 근세라고 부른다. 그러나 의친왕이 살던 시대는 20세..

'대한제국'은 성공한 역사 마케팅 중 하나다. 실체에 접근하기보다는 격동의 근대에 우리가 좀 잘했으면 하는 심리에 (일본만 아니었으면) "잘했어", 또는 (계속 존속했더라면) "잘했을 거야"라는 애정이 더해져 매스미디어에는 곧잘 고종과 명성황후(민비)가 우국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드라마나 소설을 역사로 보지 말아야' 하는 건 당연지사고 또 두 부부에게서 나라 살릴 마음이 없었다고 단언하기 어려우나 신하와 백성들은 나라를 살리겠다고 목숨을 내던지는 판에 일본 황실의 일원이 되어 호의호식하거나 정권욕에 불타 일가친척을 요지에 앉히고 미신에 휘둘려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에 지나친 미화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각설하고, 조선이 독립을 선언하고 제국으로 국체를 바꾸고 국호도 바꾼 1897년 이후를 대한제국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