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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선주先主(유비) 목황후穆皇后는 진류인陳留人이다. 오빠 오일吳壹은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 일의 부친은 본디 유언劉焉과 친구였던 까닭에 언을 따라 촉으로 들어갔다. 언이 다른 뜻을 두고 있던 차에 [한진춘추漢晉春秋: 선주가 익주益州로 들어가자 오吳가 손부인孫夫人을 불러들였다. (이때) 부인은 오로 태자太子를 데려가려 했다. 제갈량諸葛亮이 조운趙雲을 시켜 병력을 배치해 강을 막아 태자가 가지 못하게(남아 있게) 하여 제지할 수 있었다.] 관상 잘 보는 이가 태후의 상을 보더니 고귀해 질 것이라 했다. 언이 이때 아들 모瑁에게 들어오라 하여 모의 부인으로 들였다. 모가 죽자 황후는 홀로 지냈다. 선주가 익주益州를 평정하자 손부인孫夫人이 오吳로 돌아갔고 여러 군신들이 선주에게 황후를 맞을 것을 권했다. 선주가 유..
유비 휘하의 대표적 문신, 손건의 열전이다. 손건孫乾은 자가 공우公祐로 북해인北海人이다. 선주先主가 서주徐州를 다스릴 때 종사從事로 벽소했고 [정현전鄭玄傳: 정현이 건을 주州에 추천했다. 건이 (유비로부터) 벽소된 것도 현이 천거했던 것이다.] 훗날 (선주)를 호종했다. 선주는 조공曹公에게 등을 돌리고 건乾을 보내 원소袁紹와 결탁했고 형주荊州에 머무르려 할 때 건은 다시 미축麋竺과 함께 사신이 되어 유표劉表에게 갔는데 모두 뜻대로 되었다. 훗날 표表(유표)는 원상袁尙에게 편지를 보내 형제 분쟁의 변란을 이야기하며 “매번 유좌장군劉左將軍[유비]・손공우孫公祐[손건]와 이 일을 함께 논했는데, 그 고통이 뼈속까지 스며 서로 붙잡고 슬퍼하였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중히 여겼다. 선주先主가 익주益州를 평정하고 건..
미축麋竺은 자가 자중子仲으로 동해東海 구인朐人이다. 조상 대대로 돈을 벌어[貨殖] 동객僮客 만 인을 거느리고 재산 거억을 모았다. [수신기搜神記: 미축이 일찍이 낙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까지 수십 리를 남겨 두고 길가에서 부인 한 명을 보았다. 축에게 (말 또는 가마를) 태워달라 하여 수 리를 지나자 부인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떠나며 미축에게 말했다. “나는 천사다. 동해 미축의 집에 불을 지르러 가던 차에 그대가 태워준 것이 고마워 이야기해 준다.” 미축이 사사로이 부탁하자 부인이 말했다. “태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그대는 빨리 가라. 난 천천히 갈터이니 한낮에 불이 날 것이다.” 미축이 집에 도착해 재물을 모두 밖으로 꺼내놓자 한낮에 화재가 크게 일어났다.] 후에 서주목徐州牧 도겸陶謙이 별가종사..
(삼국지) 유언, 촉으로 가다.(전편)유비가 촉 땅에서 바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유언-유장 부자가 만들어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정사 삼국지의 편자 진수도 촉서 서두, 유비의 앞에 선주전을 두어 유언,alsdaskind.tistory.com(전편에서 계속) 유비가 촉 땅에서 바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유언-유장 부자가 만들어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정사 삼국지의 편자 진수도 촉서 서두, 유비의 앞에 선주전을 두어 유언, 유장 부자의 사적을 기록했다. 그럼 이하 그 첫 번째 유언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까만색은 삼국지 본문, 하늘색은 배송지 주석)이때 양[익]주(涼)[益]州의 역적 마상馬相, 조지趙祗 등이 면죽현綿竹縣에서 스스로 황건 自號黃巾이라 칭하고..
유비가 촉 땅에서 바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유언-유장 부자가 만들어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정사 삼국지의 편자 진수도 촉서 서두, 유비의 앞에 선주전을 두어 유언, 유장 부자의 사적을 기록했다. 그럼 이하 그 첫 번째 유언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까만색은 삼국지 본문, 하늘색은 배송지 주석) 유언劉焉의 자는 군랑君郎이며 강하江夏 경릉인竟陵人이다. 한漢 노공왕魯恭王의 후예로 장제章帝 원화元和 연간 경릉竟陵으로 이봉된 지파다. 언焉은 어려서 주군州郡에서 일했는데 종실宗室인 까닭에 중랑中郎에 배수되었으나 후에 스승 축공祝公이 죽자 벼슬을 떠났다. [배송지 의견(臣松之案): 축공은 사도司徒 축염祝恬이다.] 양성산陽城山에 살며 학문에 매진하다가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발탁되어 사도부司徒府에..
삼국지 촉서는 유비劉備를 다룬 선주전先主傳 앞에 유비가 촉에 근거지를 마련하기 전까지 촉을 다스렸던 유언劉焉과 유장劉璋 부자를 주인공으로 한 유이목전劉二牧傳으로 시작한다. 다음은 그중 유장 부분이다. 유장(劉)璋의 자는 계옥季玉으로 자리를 이어받았다. 장로張魯가 차츰 교만해셔 유장을 따르지 않자 유장이 장로의 어머니와 동생을 죽여 서로 원수가 되었다. 유장이 매번 방희龐羲 등을 보내 장로를 공격하여 여러 차례 격파했다. 장로의 부곡部曲 다수가 파서巴西에 있었기에 방희를 파서태수巴西太守로 삼아 병력을 거느리고 장로를 막도록 했다. [영웅기英雄記: “방희와 유장은 친구인데다 유장의 여러 아들을 곤란에서 구해준 까닭에 유장이 방희에게 덕을 베풀었고 방희를 파서태수로 삼아 결국 권세를 독점하게 했다.”] 훗날 ..
(삼국지) 조자룡, 전설이 되다.(전편) 조운趙雲은 자가 자룡子龍으로 상산常山 진정인真定人이다. 본디 공손찬公孫瓚의 부하였으나 찬이 선주先主에게 보내 전해田楷를 도와 원소袁紹를 막게 하여 조운이 수종하며 선주의 주기主 alsdaskind.tistory.com (전편에 이어) 선주가 가맹관葭萌還에서 유장劉璋을 공격하며 제갈량諸葛亮을 부르자 제갈량이 조운과 장비張飛 등을 이끌고 함께 강 서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군현을 평정하고 강주江州에 다다랐다. 따로 조운을 보내 외수外水를 따라 강양江陽으로 올라가게 하여 성도成都에서 제갈량과 만났다. 성도를 평정하고 익군장군翊軍將軍으로 삼았다. [(운별전雲別傳): 익주益州가 평정되자 마침 성도成都 안 집들과 성밖 원지園地, 상전桑田을 장수들에게 나눠주자는 논의가 진행되었..
조자룡으로 흔히 불리는 조운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의 오호장군 중 한 명으로 한 얼굴 하는 데다 지혜와 무력을 두루 갖추고 게다가 천수를 누린 최고의 캐릭터입니다. 아래 글은 정사 삼국지, 즉 실제 역사 기록 속 조자룡입니다. 소설에서 어떤 부분을 잘 살렸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사마의의 후손이 세운 진나라(서진) 때 진수가 쓴 삼국지는 내용이 매우 단촐합니다. 그래서 동진말, 송초 배송지는 다른 기록을 모아 삼국지 기록을 보충했습니다. 이것을 '배송지 주'라고 부릅니다. 배송지가 인용한 여러 역사책 가운데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책이 많습니다. 그래서 배송지의 주는 삼국지 원문과 동일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럼 역사 속 조자룡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검은 글씨가 진수가 쓴 원문, 녹색 글씨가 ..
*정사 삼국지에서 황충의 분량은 불과 몇 줄 안된다. 배송지도 관심이 없었는지, 자료가 없었는지 주도 한 줄 없다. 소설에 나오듯, 관우나 장비, 마초는 실제 황충이 자기들의 반열, 즉 오호장군의 한 명으로 거론되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황충黃忠은 자가 한승漢升으로 남양인南陽人이다.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가 중랑장中郎將으로 기용해 표의 종자 반磐과 함께 장사長沙 수현攸縣을 방어했다. 조공曹公이 형주荊州에 승리하자 비장군裨將軍에 가수하고 예전 자리에 있도록 하고 장사수長沙守 한현韓玄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선주先主가 남쪽 여러 군을 평정하자 충忠이 인질이 되어 촉蜀으로 따라 들어갔다. 하맹葭萌에서 관직을 받아 군대를 돌려 유장劉璋을 공객했다. 충은 항상 먼저 올라가 진을 함락했고 용기와 기상이 삼군의 으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