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일제강점기 앳된 장난감 권총 강도 본문
일제강점기 신문을 보면 당시 여러 범죄 사건도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흉악범에 한해 신상을 공개하지만 70~80년대까지, 성명은 물론, 주소, 나이, 얼굴 사진까지 공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래 기사는 그 대표적인 예다. 아마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을 터, 신문 기사를 소개한다.
범인 중 한 명은 서울 옥인동에 사는 28세 노동자 박태원, 다른 한 명은 고양 숭인명 정릉리에 사는 18세 무직의 이완응이다. 둘은 옥인동의 '칠성대七星臺'라는 절에서 날품팔이를 하다 만난 사이다. 그 사건인즉슨 둘이 어느 날 작당하여, 혹은 둘 가운데 한 명이 계획하여 시내 모 운동구점에서 장난감 권총과 마스크를 사서 은평면 홍제리에서 미곡상(쌀집)을 하는 박승창의 집에 들어가 현금 110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같은 해 대구공설시장의 일등품 백미(쌀) 가격이 15kg에 2원 35전이었다고 하니(출처: 부산일보 1933.2.16.), 110원이면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증거품 장난감 권총을 현장에 버리고 달아나는 바람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장난감 권총의 판매처를 샅샅이 뒤졌고, 결국 한 운동구점에서 범인의 신원을 확인해 자택에서 이들을 붙잡았다. 이들이 검거되었을 때, 1원 50전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완응으로 추정되는 저 앳된 얼굴이 눈에 밟혀 이 기사를 채록해 남긴다.
홍제원의 강도범 등 2일 새벽 전원 검거
각기 제집에서 자고 있는 것을, 돈도 거의 다 찾았다.
고양군 은평면 홍제리 96번지 미곡상 박승창(朴承昌)의 집에 1일 오전 3시 40분경 2인 강도단이 나타나서 현금 110여 원을 강탈 도주하여 소관 서대문서에서는 하가(下家) 사법주임의 지휘로 사법계 총동원하여 그 부근 일대에 비상선을 늘이고 범인 체포에 고심하던 바 2일 오전 1시 경에 이르러 범인은 자가에서 깊은 잠을 이루고 있다가 모조리 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돈은 1원 50전밖에는 쓰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은 두 범인
본적 광주군 중부면 상전 6리
현주 경성부 옥인동 36 노동자 박태원朴泰垣(28세)
현주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 무직 이완응李完應(18세)
일확천금이란 꿈도 헛되이, 어리석은 생각에서 우러난 무서운 범행의 말로
(인구) 40만 대 장안은 창경원의 야앵과 한 가지 늦어가는 봄빛에 취해 있고 짖어가는 녹음은 초하의 정서를 알리고 있는 작금의 서울에 있어 왜 그들은 무서운 강도라는 범행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던가. 앞서 쓴 바와 같이 박태원, 이완응의 두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3년 되는 해에 다 같은 운명으로 옥인동에 있는 칠성대라는 절에서 한 가지 고용살이를 하면서 비로소 사귀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었지만은 이는 다만 그날그날의 호구를 하는 데 불과하였고, 그들이 그들의 장래를 굽어 살펴볼 때는 너무나 암담하여 다시 그곳에서 달리 살 길을 찾기 위해 각각 그곳을 떠나서 박태원은 노동자로, 이완응은 무직으로 오늘까지 대 장안을 좁은 듯이 헤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다 할 희망은 보이지 않고 살기에는 궁하고 하여 지난 30일 그 두 사람은 옥인동 모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드디어 강도를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완구용 피스톨과 복면구를 구해갖고 그것을 유일한 무기로 비교적 몸 피하기 용이한 (경성)부 바깥을 택하여 범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던지고 달아난 장난감 권총 유일한 단서가 되어 잡혔다.
서대문 서원 공훈
현금 110여 원을 강탈 도주한 그들은 22시간 만에 그와 같이 용이하게 붙잡혀 서대문서 사법계 일동의 공훈을 빛나게 하여 주었는가? 서대문서에서는 행적이 묘연한 범인의 체포에 고심은 사였으나 유일한 단서는 그들이 범행하고 도주할 때에 던져버리고 간 완구용 피스톨과 복면구(마스크)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서대문서에서는 시내 각 상점을 모조리 조사하여 완구용 피스톨과 복면구를 어느 상점에서 팔았고 어떠한 사람에게 팔게 되었는가를 조사하게 되어 1일 오후 3시경에 비로소 본정 3정목 모 운동구상점에서 팔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범인의 아우트라인을 알게 되어 이에 활기를 얻은 동 형사대는 필사의 활동을 계속하여 드디어 범인들이 살고 있는 주소를 알게 되었고 그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1시에 두 곳에서 독 안에 든 쥐 잡듯이 체포하게 되었던 것이다.
(매일신보 19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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