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이 고려를 멸망시킬 때, 우왕, 창왕, 공양왕을 어떻게 했는가? 같은 민족이어도 그리 했건만, 일제는 그리하지 않았다. 일제가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고종 이하 구 왕실을 없애는 것보다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조선통치에 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한제국 옛 황족들은 왕공족으로 거듭났다. 어느 누구 하나 왕위, 공위를 거부한 이는 없었다. 모두 은사공채를 한 아름씩 안고 일제에 협력했다. 의친왕은 83만원을 받았다. 친일파의 거두 이완용이 15만원을 받았으니, 5배도 넘게 받은 셈이다. 대한제국 시대에도 못 누렸던 호사였다.(대한제국 정부는 의친왕에게 궁을 내주지 않았다. 이미 흥청망청 주색잡기로 과도한 채무를 졌던 지라 내줬다가는 한일 양국의 채권자들에게 넘어갈 판이었기 때문이다.)
의친왕 후손 중 모씨는 늘 이승만을 비판한다. 그들은 이승만이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왕족의 재산이 왠말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유사 이래 왕조에서 왕조로 교체할 때는 물론이오, 왕조에서 공화정으로 교체될 때 전 왕족의 재산을 보전해 준 예는 없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루브르 박물관을 포함한 왕실 재산은 모두 국유, 즉 공화국 정부의 재산이 되었다. 당연한 순리다. 그러나 그는 일제가 보전해 준 재산을 우리 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것에 불만이 많은 듯하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피해의식 속에 그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까지 구사한다. 그중 하나가 문화유산으로 남았어야 할 것까지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그 예로 드는 첫 번째가 사동궁이라 부르는 의친왕궁이다. 의친왕궁은 대한민국 정부가 어찌 손 쓸 새도 없이 사라졌다. 의친왕궁이 파괴된 것은, 해방이 되자 적산으로 몰수될까봐 겁을 먹고 잽싸게 팔아 치워 현금화해 조금이라도 보전해 보려던 의친왕이 사기당해 시작된 일이다. 그뒤 필지도 나뉘고, 소유권도 분할되었기에 정부도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전쟁까지 일어나서), 그리고 두 번째 칠궁이다. 그는 이승만이 칠궁을 훼손하고 경무대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먼저 경무대는 고종 때부터 있던 경복궁 뒤 공터다. 이승만 정권은 총독 관저가 있던 자리를 물려받았을 뿐 그곳에 더 손을 대진 않았다. 사실 칠궁 권역이 잘려나간 것은 이승만 때가 아니다. 박정희 때 도로를 내면서 침식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박정희 탓은 하지 않는다. 왜?
사실 해방 직후 왕족을 처단하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북청년단은 재산몰수는 물론, 적어도 공민권은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왕족 처단 철저히 하라, 서청서 강조
서북청년회에서는 지난 18일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방금 국회에 상정되고 있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신축성 있는 것은 수긍할 수 있으나 이 법을 운용하게 될 위험성이 농후한 것은 유감이다. 특히 구왕족에 대한 아무런 규정도 없는 것은 이해하기 곤란하다. 소위 구왕궁의 재산은 당연히 몰수하여 국유화하여야 할 것은 물론구왕족에게 대해서도 최소한도 공민권 정지 정도의 처벌은 있어야 할 것이다.
(평화일보 1948년 8월 19일)

여기에 이승만은 왕족들은 일정 생활을 보장해 줄테니 왕족들은 구왕궁 재산을 암암리에 처분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분명 일정 생활을 보장해 준다고 했다.
구왕궁재산은 파괴 방지, 왕족들은 적당히 생활 보장, 이대통령 담화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4일 아침 중앙청 출입 기자단과 정례회견한 자리에서 구 왕릉 재산 문제에 언급하여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구왕궁 재산 처리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국무위원회에서 국유화하기로 결정되어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곧 효력을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과거에 구왕궁에 소속되는 삼림, 궁, 그 밖의 문화재 등이 혹은 황폐하고 혹은 방매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지금부터 구왕궁 재산 조사에 착수하여 황폐 또는 방매와 파괴되는 것을 철저히 단속하겠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구왕궁재산이 잘 보호될 것이며 이미 방매된 궁전 등에 대해서는 법이 정한 바에 의해 적절한 조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왕궁의 왕비, 친왕 되는 분들에게는 법에 의해 생활을 보장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들 왕공족은 생활에 위협을 받을 리는 없다. 그러므로 그분들이 법에 의해 구왕궁 재산이 국유화되기 전에 구왕궁 재산을 암암리에 처분한다면 후일 법이 발동될 때에 도리어 그분들에게 불리하게 될 것이다. (연합신문 1949년 3월 5일)

여기까지가 전쟁 전의 상황이다. 의친왕의 아들 이곤의 부동산 사기 재판에서 판사는 한국 전쟁 전까지 정부에서 왕족들에게 생활비를 보전해 주었다고 했다. 사실 대한민국 정부의 보조금 대상은 일제강점기의 왕공족, 즉 윤비(순종비), 이강(공), 김비(이강공비), 박비(이우공비), 이청(공) 정도다. 그 외의 후손은 애시당초 왕공족에 등록조차 못했던 이들이다. 그들은 왕공족의 혈연일 뿐, 애시당초 우대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들이 해방 후 힘들었던 이유는 그저 일제강점기 내내 호사를 누렸던 왕공족의 부산물에 기생하며 살았기에 직접 생계를 꾸릴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슬퍼런 이승만 시대"라고 하지만, 서북청년단을 "워~워~"한 것은 이승만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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