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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위키백과 의친왕 항목에는,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은 조선의 왕족이고 대한제국의 황족 종실이며 고종의 두 번째 아들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라고 했다. 또 나무위키는 “고종의 5남이자, 고종의 아들들 그리고 나아가 대한제국 황족들 중 유일한 독립유공자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제 경찰의 조사 내용은 이를 의심케 한다. 후손을 비롯한 이강의 지지자들은 이 조사 기록은 조작된 것이라고 말한다. 대외적으로 공개될 경우 큰 파장이 있어 일제가 조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친왕이 상해로 가려 했던 사실은 당시 우리말 신문인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실린 정도로 감춰진 일도 아니었다. 또한 심문조서를 굳이 조작할 이유도 없다. 실제로 망명을 주도했던 김가진金嘉鎭 은 의친왕이 “부족하지만” 순종은 창덕..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은 삼일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하려 했다 실패했다. 그래서 다른 대한제국 황실 가족 가운데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뇌피셜로 증거도 없는 독립운동 이야기를 덧붙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또 증좌도 없는 그런 이야기를 퍼 나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망명 사건 이후 처벌받지 않은 사람은 이강뿐이다. 망명 실패 이후 그를 망명시키려 했던 인사들의 구명운동은커녕 일제강점기 내내 숨죽이고 살았다. 호기롭게 “내 뜻이오”라는 이야기도 일절 하지 않았다.(최소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헤이그 밀사 사건이 “고종의 뜻”이었다며 고종을 찬양하지만 자신이 보낸 밀사들의 삶에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던 고종의 모습은 잘 모른다. 고종과 그의 가족들은 나라를 소유물..
열차 타기 바빠서 대개는 부랴부랴 새로 지은 역사로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옛 역사는 그저 버스 창밖 또는 신역사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먼 발치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곳에 새로운 문화시설이 생겼다고 하지만, 종교인, 시위꾼, 노숙자들을 헤치고 그곳까지 발걸음을 내딛기에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문화역 서울 284는 서울로 7017 만큼이나 인기가 없다. 옛 역사 앞에는 한 손에 수류탄을 쥔 당당한 노인의 동상이 있다. 독립지사 강우규(姜宇奎, 1855~1920)다. 바로 이곳에서 조선의 3대 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날렸으나 실패, 붙잡히는 바람에 형장의 이슬로 순국했다. 조선총독부 일간지 매일신보는 사건 직후 한동안 이 사실을 보도하지 못했다. 신문에 실린 것은 한..
경남 해안가 몇 곳에는 왜란 때 일본 장수들이 쌓은 왜성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입장에서는 성과 없이 그 큰 전쟁을 끝낼 수 없었을 테고, 경상도 일부라도 점령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왜성이 궁금해서 울산왜성을 찾았다. 그런데, 울산왜성 주차장으로 검색하니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 인터넷에서 이리 저리 찾아보니 울산하면 떠오르는 지명, 학성공원이 울산왜성이었다. 성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전망이 좋고 태화강이 바다와 만나는 길목에 있어 이곳에 성을 지은 까닭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산등성이 중간 중간에 위치한 평지에는 각기 삼지환(三之丸), 이지환(二之丸), 본환(本丸) 팻말이 있다. 산노마루, 니노마루, 혼마루를 우리식 한자로 표현한 것이 약간 어색했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