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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유언, 촉으로 가다(후편)

자불어 2023. 9. 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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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유언, 촉으로 가다.(전편)

유비가 촉 땅에서 바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유언-유장 부자가 만들어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정사 삼국지의 편자 진수도 촉서 서두, 유비의 앞에 선주전을 두어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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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계속) 유비가 촉 땅에서 바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유언-유장 부자가 만들어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정사 삼국지의 편자 진수도 촉서 서두, 유비의 앞에 선주전을 두어 유언, 유장 부자의 사적을 기록했다. 그럼 이하 그 첫 번째 유언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까만색은 삼국지 본문, 하늘색은 배송지 주석)

이때 양[익]주(涼)[益]州의 역적 마상馬相, 조지趙祗 등이 면죽현綿竹縣에서 스스로 황건 自號黃巾이라 칭하고 노역에 지친 백성을 모으자 하루이틀만에 수천 명을 얻었다. 바로 앞의 낙현雒縣을 공파하고 익주益州를 공격해 검儉을 죽였다. 또한 촉군蜀郡, 건위犍爲에 도달하니 몇 달 사이에 세 군을 격파했다. 상相은 자신을 천자天子라 칭했고 무리가 만 명에 달했다. 주州의 종사從事 가룡賈龍은 본디 [가]병[家]兵 수백 명을 거느리고 건위犍爲의 동쪽 경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백성과 관리를 거두어 천여 명을 결성하여 며칠에 걸쳐 상相 등을 공격하여 물리치자 주가 안정되었다. (가)룡龍이 이졸吏卒을 가려 뽑아 유언을 맞이했다. 유언이 면죽綿竹으로 이동하며 반란을 일으킨 백성을 어루만지고 관대하게 다스리면서 몰래 다른 계획을 품었다. 장로張魯의 어머니가 귀도鬼道를 시작할 무렵 젊고 용모가 뛰어나 늘 언의 집안과 왕래했다. 따라서 언은 노를 독의사마督義司馬로 삼아 한중漢中에 주둔시켜 곡각谷閣을 끊고 한漢의 사신을 살해했다. 유언은 미적米賊이 길을 막아 오가지 못하게 한다며 상소하고 또 다른 일로 엮어서 주州의 호강豪強 왕함王咸과 이권李權 등 10여 인을 죽여 법의 엄격함을 보였다. [익부기구잡기益部耆舊雜記: 이권李權의 자는 백상伯豫으로 임공장臨邛長이 되었다. 아들 복福은 건위양희보신찬犍爲楊戲輔臣贊에 보인다. *건위태수 양희를 도운 신하들에 대한 찬문] 건위태수犍爲太守 임기任岐와 가룡賈龍이 이를 기화로 반란을 일으켜 언焉을 공격했다. 언焉이 기岐와 룡龍을 공격해 죽였다. [영웅기英雄記: 유언劉焉이 거병하여 천하와 더불어 동탁董卓을 토벌하지 않고 주를 보호하고 자신을 지켰다. 건위태수犍爲太守 임기任岐가 스스로 장군將軍이라 칭하고 종사從事 진초陳超와 거병하여 유언을 공격했으나 언이 그들을 격파했다. 동탁董卓의 명으로 사도司徒 조겸趙謙이 병력을 거느리고 (익)주로 향하자 교위校尉 가룡賈龍이 병사를 돌려 언을 공격했지만 언이 청강青羌을 보내 싸우니 능히 격파해 죽일 수 있었다. 기岐와 룡龍 등은 모두 촉군인蜀郡人이다.]

是時(涼)〔益〕州逆賊馬相・趙祗等於綿竹縣自號黃巾, 合聚疲役之民, 一二日中得數千人, 先殺綿竹令李升, 吏民翕集, 合萬餘人, 便前破雒縣, 攻益州殺儉, 又到蜀郡・犍爲, 旬月之間, 破壞三郡. 相自稱天子, 衆以萬數. 州從事賈龍(素)領〔家〕兵數百人在犍爲東界, 攝斂吏民, 得千餘人, 攻相等, 數日破走, 州界清靜. 龍乃選吏卒迎焉. 焉徙治綿竹, 撫納離叛, 務行寬惠, 陰圖異計. 張魯母始以鬼道, 又有少容, 常往來焉家, 故焉遣魯爲督義司馬, 住漢中, 斷絕谷閣, 殺害漢使. 焉上書言米賊斷道, 不得復通, 又託他事殺州中豪強王咸・李權等十餘人, 以立威刑. [益部耆舊雜記曰: 李權字伯豫, 爲臨邛長. 子福. 見犍爲楊戲輔臣贊] 犍爲太守任岐及賈龍由此反攻焉, 焉擊殺岐・龍. [英雄記曰: 劉焉起兵, 不與天下討董卓, 保州自守. 犍爲太守任岐自稱將軍, 與從事陳超舉兵擊焉, 焉擊破之. 董卓使司徒趙謙將兵向州, 說校尉賈龍, 使引兵還擊焉, 焉出青羌與戰, 故能破殺. 岐・龍等皆蜀郡人.]

유언의 뜻이 점차 이루어지자 승여乘輿를 만들어 천승千乘여를 갖췄다.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는 表上焉有似子夏在西河疑聖人之論. 이때 언焉의 아들 범範이 좌중랑장左中郎將이 되고 탄誕이 치서어사治書御史가 되었으며, 장璋이 봉거도위奉車都尉가 되어 모두 헌제獻帝를 따라 장안에 있었다. [영웅기英雄記: 유범은 부친 유언이 익주목이 되고 동탁이 몇 번을 불렀으나 일절 가지 않았다. (동탁은) 유범의 형제 3인을 잡아다가 미오郿塢에서 형구를 채우고 어두운 감옥(陰獄)에 묶어 두었다.] 오직 막내(둘째) 아들 별부사마別部司馬 모瑁 만이 홀로 언을 따라갔다. 헌제獻帝가 장璋을 보내 훈계[효유曉諭]했으나 언焉은 장을 붙잡아두고 (돌려) 보내지 않았다. [전략典略: 이 때 유장은 봉거도위奉車都尉 경사에 있었다. 유언이 병을 핑계로 유장을 불러들이자 유장은 직접 잘못을 반성하는 표를 올렸으나 유언은 유장을 잡아두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때 정서장군征西將軍 마등馬騰이 미郿에 주둔해 반란을 일으키자 언焉과 범範이 등騰과 모의하여 병사를 끌고와 장안을 습격하려 했다. (그러나) 모의가 탄로나자 범範은 괴리槐里로 달아났고 등騰은 패해 후퇴하여 양주涼州로 돌아갔다. 범範은 바로 죽임을 당하고 이 일로 탄誕도 붙잡혀 형을 받았다. [영웅기英雄記: 유범은 장안에서 마등馬騰의 진영으로 달아나 유언에게 병력을 요청했다. 유언은 교위校尉 손조孫肇를 보내 병사를 이끌고 돕도록 했으나 장안에서 패했다.] 의랑議郎 하남河南 방희龐羲가 언의 집안과 교류가 있어 이에 언의 여러 손자를 장수로 모집해 촉蜀으로 데려왔다. 이때 언은 벼락을 맞아 성이 모두 불타고 거마장구가 모두 사라쳐 피해가 민가에까지 미쳤다. 유언이 치소를 성도成都로 옮겼을 때는 아들이 (병으로) 고통을 받았고 재이災異도 감응했다. (유언은) 흥평興平원년(194) 등에 종기[癰疽]가 나서 사망했다. 주州의 대리大吏 조위趙韙 등이 (유언의 아들) 장이 온화하고 인자한 것에 끌려 여러 사람과 함께 장을 익주자사로 추대했다. 조서를 내려 (유장에게) 감군사자監軍使者로 익주목을 영요[領益州牧]하게 하고 위韙는 정동중랑장征東中郎將에 임명해 무리를 거느리고 유표劉表를 공격하게 했다. [영웅기英雄記: 언이 죽자 아들 장璋이 자사를 대신했다. 장안長安에서는 영천潁川의 호모扈瑁를 자사로 삼아 한중漢中에 들어가게 했다. 형주별가荊州別駕 유합劉闔이 (유)장의 장수 심미沈彌・누발婁發・감녕甘寧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하여 유장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형주로 달아났다. 유장이 조위趙韙에게 형주로 진공하여 구인朐䏰에 주둔케 했다. 위가 준동하자 아래로는 반란이 빈발했다.]

焉意漸盛, 造作乘輿車具千餘乘. 荊州牧劉表表上焉有似子夏在西河疑聖人之論. 時焉子範爲左中郎將, 誕治書御史, 璋爲奉車都尉, 皆從獻帝在長安, [英雄記曰: 範(聞)父焉爲益州牧, 董卓所徵發, 皆不至. 收範兄弟三人, 鎖械於郿塢, 爲陰獄以繫之.] 惟(小)〔叔〕子別部司馬瑁素隨焉. 獻帝使璋曉諭焉, 焉留璋不遣. [典略曰: 時璋爲奉車都尉, 在京師. 焉託疾召璋, 璋自表省焉, 焉遂留璋不還.] 時征西將軍馬騰屯郿而反, 焉及範與騰通謀, 引兵襲長安. 範謀泄, 奔槐里, 騰敗, 退還涼州, 範應時見殺, 於是收誕行刑. [英雄記曰: 範從長安亡之馬騰營, 從焉求兵. 焉使校尉孫肇將兵往助之, 敗於長安.] 議郎河南龐羲與焉通家, 乃募將焉諸孫入蜀. 時焉被天火燒城, 車具蕩盡, 延及民家. 焉徙治成都, 既痛其子, 又感祅災, 興平元年, 癰疽發背而卒. 州大吏趙韙等貪璋溫仁, 共上璋爲益州刺史, 詔書因以爲監軍使者, 領益州牧, 以韙爲征東中郎將, 率衆擊劉表. [英雄記曰: 焉死, 子璋代爲刺史. 會長安拜潁川扈瑁爲刺史, 入漢中. 荊州別駕劉闔, 璋將沈彌・婁發・甘寧反, 擊璋不勝, 走入荊州. 璋使趙韙進攻荊州, 屯朐䏰. 上蠢, 下如振反.]

三國志 卷31 蜀書1 劉二牧傳(劉焉), pp.866~867.

(유언전 끝, 유장전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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