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급쟁이 1년생, 이곤 씨의 그 뒷생활,
모범사원으로 재생, 고독만이 단 하나의 벗
생활고에 허덕이다가 좋지 못한 무리들 꼬임에 빠져 죄를 범하고 차디찬 법의 심판대 앞에 서서 한 때 사회의 동정을 온몸에 집중시키던 비극의 왕손 이곤 씨는 지난 7월 25일 집행유예란 건을 받고 석방되었는데, 그 후 무엇을 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생활은 여하한 것인지를 소개하기 위해 기자는 21일 오후 4시 그가 근무하고 있는 동대문 밖 대한제빙회사를 방문했다.
제빙회사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방안에 들어서자 감색 정장 재킷(세비로)에 회색 바지(즈봉)를 입고 무슨 카드에다 무엇을 기입하고 있는 이곤 씨를 발견하였다. 그는 형무소에 석방되자마자 동 회사 문(문계식) 사장의 후의로 동 회사의 일개 샐러리맨이 되었던 것이다. 인사를 청하고 마주 의자에 걸터앉게 되자 몹시 어색한 듯 표정을 지었다. 김장이나 연료 준비가 다 되었냐는 기자의 인사에 그는 쓸쓸한 미소를 띠며“웬 걸요. 이제야 충남 처갓집에 맡겨둔 처자를 올라오라고 기별하였는걸요. 또 올라온들 어디 김장할 여유가 생길 것 같지 않군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동료들이 있는 사무실에서 기자와 얘기함이 민망스러웠는지 근처에 있는 대폿집으로 가자고 권유하였다. 대폿집에서 대포를 같이 나누며 근자의 생활에 대해 주섬주섬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저는 사회에서 유치원생에 틀림 없지요. 아무것도 잘 모르는 저를 사원으로 채용하고 또박또박 8천 환씩 월급을 주며 항시 공사 간에 돌아봐 주는 문사장에게 그저 감사의 눈물을 흘릴 따름입니다. 네? 친구요. 저에게는 친구도 어디 있어야지요. 요즘에는 다방에도 안나갑니다.” 구중궁궐 안에서 사회생활을 모르고 자라난 그는 어미 잃은 어린양과 같이 몹시 고독을 느끼는 듯하였다. 그에게는 일요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일로 일이 있으면 뭐 합니까..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요. 그저 할 줄 모르는 일이나마 열심히 하고 있으면 심심한 줄은 모르겠더군요!”라고 하였다. 저녁때 회사를 퇴근하고 견지동 85 사동궁 집에 들어갈 적이면 혼자서 대폿집도 곧잘 찾는다고 하여 그는 항상 고독만이 친구라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이미 저녁노을은 회색으로 변하였으며 작별인사를 하고 귀로에 섰는데, 동 회사 문 사장 얘기에 의하면 이곤 씨는 처음 취직하였을 당시는 출근시간이 10시도 되었다가 12시도 되었다가 또 퇴사 시간도 그저 제맘대로 하기에 그리하여서는 안 된다고 주의하고 출퇴근 시간의 엄수를 명하자 그 후부터는 오전 9시 출근에 오후 5시 퇴근을 엄수하는가 하면 그에게는 조그마한 거짓도 없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사진은 집무하는 이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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