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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전위의 정지절비 고증

자불어 2023. 12. 1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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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절비발程知節碑跋

 

뤄전위(羅振玉)가 정지절程知節(589~665) 비문을 읽고 고증한 글로 병인고丙寅稿에 실려있다. 정지절은 당대 명장 중 한 명으로 본래 이밀李密의 휘하였으나 왕세충王世忠에게 붙잡혔다가 당에 항복했다. 진왕부秦王府 좌삼통군左三統軍이 되어 송금강宋金剛, 두건덕竇建德, 왕세충과의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능연각凌煙閣 24공신 중 19위로 올라갔으며, 고종 때는 총산도행군대총관蔥山道行軍總管으로 서돌궐 아사나하로阿史那賀魯의 반란을 진압했다. 현재 정지절 비는 소릉박물관昭陵博物館에 있다.

이 비는 일찍이 ≪금석록일록金石録日録≫에 수록한 바 있다. 20년 전쯤 허경종許敬宗이 지은 비문이 출토되었다. 글씨는 양정暢整이 썼는데, 그는 ≪청하장공주비清河長公主碑≫도 썼다. 비문의 글자는 또렷했으나 매 행의 위아래로 여러 글자가 결실되어 안타깝다. 양당서(신당서, 구당서)는 모두 정지절의 본명을 요금䶧金이라고 했으나 자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비에 따르면 자는 의정義貞이다. 비는 증조曾祖 흥興이 제齊 연주별가兗州别駕, 조부(祖) 철哲은 제 진주사마晉州司馬라고 했는데 열전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단 부친의 이름은 비가 손상된 부분에 있어 파악할 수 없는 게 아쉽다. 비에서 기록한 정지절의 관력은 역사 기록과 대개 부합하는데 비에 관직을 배수받은 연월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열전에는 아들 처묵處默이 작위를 물려받고 처량處亮이 공신 자제로 청하장공주清河長公主와 혼인해 부마도위駙馬都尉, 좌위중랑장左衞中郎將이 되고 작은 아들 유약由弱은 관이 우금오장군右金吾將軍까지 올랐다고 했다. 비에는 “아들 명위장군明威將軍, 계주회남부절충桂州淮南府折衝 처사處嗣”가 있는데 열전에는 실리지 않았다. 또한 비에는 정관貞觀 7년 둘째 아들 처량處亮을 동아현개국□東阿縣開國□에 봉했다고 했으나 열전에는 동아에 봉했다는 이야기가 빠져 있다. 모두 비석의 내용에 근거해 열전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해야 한다.

程知節碑跋

此碑曾著録於≪金石録日録≫, 近二十年始出土許敬宗撰文, 暢整書, 書≪清河長公主碑≫者. 碑文字甚清晰, 惜每行上下皆損數字. 兩≪唐書≫均稱程知節原名䶧金, 而不及其字, 據碑則字義貞. 碑稱曾祖興, 齊兗州别駕, 祖哲, 齊晉州司馬, 傳亦不及. 惜父之名在碑損處不可見矣. 碑叙知節歷官與舊史多合, 惟碑於拜官年月較傳爲詳耳. 傳稱子處默襲爵, 處亮以功臣子尙清河長公主, 授駙馬都尉, 左衞中郎將, 少子由弱, 官至右金吾將軍. 碑有“子明威將軍, 桂州淮南府折衝處嗣”, 則傳所不載. 又碑載貞觀七年封第二子處亮爲東阿縣開國□, 傳亦失載東阿之封, 均富據碑以補本傳之佚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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