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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 이준은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가 개최한 포럼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의 자료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 11월 23일 김구와 김규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상해임시정부 각료들과 사동궁에 의친왕을 방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하여 임시정부 요인들이 주축이 된 한국독립당에서의 활동을 요청하였고, 의친왕은 이를 수락하였고 운현궁 양관을 한국독립당 당사로 사용하고 백범 김구 선생의 숙소로 사용하게끔 배려하였다. 1947년 3월~1949년 8월까지 한국독립당 최고위원 겸 전임고문을 역임하였으나, 이외에는 일부러 적극적인 정치참여나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피했다.의친왕의 후손들은 일제강점기까지 황실, 또는 의친왕이 ..
#마지막왕녀 #이혜경 #의친왕 #역사왜곡 #안창호 #공립협회 #독립운동"마지막 왕녀" 이해경 여사는 의친왕의 딸(5녀)로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 그는 컬럼비아대학 사서로 근무할 때 부친 이강 공의 독립운동 기록을 발견하고, 이후로 계속 자료를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국내에서 "나의 아버지, 의친왕"이란 저서를 출간해 그 일부를 소개한 바 있다. 지난 광복절(2024.8.15.) 뉴욕 한인회는 여사에게 감사패를 수여했고, 또 이를 계기로 여사가 발굴한 의친왕의 행적이 다시 언론 지면에 회자되고 있다. 그중 하루 앞두고 작성된 미주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미국 유학길에서 시작된 김규식, 안창호와의 인연 1877년 고종이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난 의친왕은 1899년 미국 유..
경술국치 이후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 황실 아래로 편입되었다. 고종은 이태왕을, 순종은 이왕을, 그리고 이하 일가는 대한제국 황제의 친족관계, 구 지위에 따라 공 이하 작위를 받았다. 의친왕은 여러 서예 작품을 남기며 말미 관지에 "춘암 이강", "이강공", "의왕 이강" 등이라고 자신을 밝혔다. 이중 "의왕"은 대한제국 시대의 봉작이었던 만큼, 더러 그 자체로 항일이나 저항, 또는 대한제국의 회복 등의 의미가 담겼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어 소개한다. 효덕전의 망제, 이왕 전하 어친행, 의친왕 전하께도지난 24일은 음력으로 2월 15일이며 또한 고종 태황제의 부묘 길일은 음력으로 21일임으로 별다례別茶禮는 다시 받들지 못하시겠음으로 작일 오전 11시에 창덕궁 효..
의친왕 이강은 상해 임시정부의 망명 시도로 대한제국의 여타 다른 황족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시도를 제외하고 그의 독립운동은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음주벽이나 축첩으로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윤치호 역시 일기에서 상해 임시정부에서 의친왕을 모셔가도 별반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매스미디어 등에서 고종, 명성황후, 덕혜옹주 등을 독립의 아이콘으로 그려 내면서 마치 이것이 사실인냥 포장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가 2024년 6월 27일 시청 여민관에서 개최한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이라는 학술행사도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집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https://ww..
#역사왜곡 #세종시 시리즈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는 2024년 6월 27일 세종특별자치시 시청 여민관에서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이라는 학술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세종시 부강면에 있는 두 채의 한옥(송암 김재식 고택, 홍판서댁 - 홍순형 고택, 전 유계화 가옥)을 독립운동 근거지로 조성하고자,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다. 여기에 발표한 사람은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과 사무총장, 그리고 전 국사편찬위원장이자 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이태진 등이었다. 이날 이태진은 "의친왕 이강과 송암 김재식의 유대 관계 추적 - 황제 직속 항일 정보기구 '제국익문사' 활동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글에 의친왕과 송암 김재식의 관계는 매우 적은 분량을 차지한다. 이날..
#역사왜곡 #세종시 시리즈세종시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는 부강면을 독립운동사적지로 추진하며 홍순형洪淳馨에 주목했다. 이에 앞서 시는 부강면의 고택을 기존의 '유계화 가옥'에서 ‘홍참판 댁’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지난 6월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이라는 황당한 행사를 거창하게 진행했다. 이 행사 자료집 원고에 따르면, 또 한 명의 제국익문사 요원, 여문 홍순형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세종 인물이 있는데, 바로 여문 홍순형이다.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으로 헌종비 효정왕후의 조카이다. 1874년 증광별시 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중략)… 제국익문사의 사기(차관급)이 되어 이호석 독리를 보필하는 한편, 세종 부강면 김재식 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별서를 짓게 된다. ..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일기를 읽다가 경술국치 전 며칠간을 살펴봤다. 온갖 야설에는 황제의 뜻이 아니었다는 둥의 이야기가 있지만, 나라의 멸망 앞에서 고종과 순종은 무사태평했다. 데라우치조차도 한 나라의 몰락에 "아아"라 했으나, 두 명의 암군은 평온 무사하게 자기 나라의 멸망을 지켜봤다. 또한 이완용 등 악질 친일파가 끝까지 협상에서 놓치 않았던 것은 국호와 "왕호"였다. 즉 이 병합의 주역들은 나라에는 역적이었지만 황실에겐 충신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내내 이왕가가 친일파들과 함께 쿵짝쿵짝했던 까닭을 보여준다. 이들 덕분에 황실 가족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 황실에 편입되어 왕공족으로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 고종이 독립운동을 했다거나, 또 순종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1910년 8월) 1..
이왕직李王職에 새로 생긴 주전과장主殿課長 박주빈朴冑彬 씨 이왕직에 장시사掌侍司가 없어지며 그 대신 주전과라는 것이 생겼다. 주전과는 그동안 장시사에서 맡아서 하던 내전 제반 사무를 맡아 보게 되었으니 새로히 과장이 된 분은 이왕가에 20여 년간 봉사하던 박주빈씨다. 47세에 비로소 과장이라니 기쁘기보다는 부끄럽소 하는 박과장의 낯에는 그래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실렸다. [사진은 20일 낮, 새 과장석에 앉은 박씨] (매일신보 1928.8.21.)대한제국 관원이력은 다음과 같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DB 참조) 본관 고령 생년월일 1882년 1월 7일 현주소 충청남도 홍주군 얼방면 효천리 학력 1888년 한문사숙漢文私塾 입학 1900년 한문漢文 휴학 1903년 3월 경성학당京城學堂 입..
#역사왜곡 #세종시 시리즈최근 세종시는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 학술행사회를 개최했다. 이 학술행사의 주요 요지 가운데 하나는 세종시에 거주했던 김재식의 독립운동 활동을 규명하는 것이며, 여기에 더해 세종시가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 근거지, 세종"을 주제로 사적지를 조성해 보겠다는 목적도 겸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는 세종특별자치시 최민호 시장이 개회사를 하고, 더불어 국가보훈부 이희완 차관, 광복회 이종찬 회장이 축사를 했다. 이번 행사는 당연히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었고, 향후 사적지 조성 사업까지 함께 한다면 더 많은 세금이 투입될 터다. 일제의 강점에서 일신을 다 바쳐 노력한 독립운동에는 존경을 표해야 한다. 그런 만큼 독립운동 서훈 지정 여부는 엄격해야 한다. 독립운동..
얼마 전 의친왕의 한 후손이 의친왕의 독립활동을 열거하며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의친왕이 도산 안창호와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협회를 창립해 스티븐슨 암살 사건을 지시" 그리고 대한제국 고종의 후손 단체 홈페이지에는 의친왕이 1902년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 도산 안창호를 만나 “미국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써달라”며 금일봉을 전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야기가 인터넷을 타고 여과 없이 전파되면서 진짜 사실인냥 돌아다니고 있다. 그래서 이를 검증해 보고자 한다. 공립협회를 의친왕이 설립했다고? 공립협회는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운동 단체다. 하와이에 정착했던 교민 다수가 이 무렵 미국 본토로 생활 터전을 옮기고 있었다. 이에 1904년 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