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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파주 광탄면 고령산 보광사普光寺는 사찰 기록에 진성여왕 8년(894)에 도선국사(827~898)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 조선을 이어오며 여러 차례 중창되었으나 현재의 사세를 갖춘 계기는 영조의 모친 숙빈 최씨의 원당이 되면서로 보인다. 이후 조선 왕실의 후원을 받았으며, 고종 때 상궁들에 의해 취전鷲殿을 비롯하여 건물 단청과 불화를 조성했다. 조선시대까지는 고령사高嶺寺로 불렸던 듯싶다. 동국여지승람뿐 아니라 이곳에 유람왔던 서거정徐居正(1420~1488)도 시에서 ‘고령사’라고 했다. 벽제碧蹄 碧蹄驛上雨新晴 벽제역 가에는 비가 처음 개었고 高嶺寺前溪水生 고령사 앞에는 시냇물이 불었는데 十里靑山羸馬影 십 리라 청산 곁엔 말의 그림자 파리하고 一鞭紅日急砧聲 한 채찍 석양 아랜 다듬이소리 급하여라 乾坤濩..
국립중앙박물관의 새로운 랜드마크, 이제 학생도, 어른도 여기서 모인다. 광개토대왕릉비, 고구려의 가장 위대한 왕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린 비석이다. 고구려의 수도가 자리잡았던 오늘날 중국 지린성(吉林省) 퉁화시(通化市) 지안시(集安市)에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주변으로는 태왕릉, 장군총 등 고구려의 왕릉과 귀족들의 무덤이 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광개토대왕비나 광개토왕비(능비 여부 논쟁?) 또는 호태왕비(시호 축약형) 등으로 불린다. 그래서 관련 도서를 찾기 위해서는 이 모든 단어를 한 번씩 입력해야 한다. 광개토대왕릉비(이하 비석으로 축약)는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광개토대왕 사후 414년 9월 29일(음력) 왕릉을 조성하고 세운 비석이다. 비석의 내용은 대략 1면에는 ..
조선화론집성은 우현 고유섭(1905~1944)이 조선시대 에서 회화 관련 기록을 간추려 모은 책이다. 저자 생전에는 간행되지 못하고 1965년 황수영이 유족으로부터 원고를 받아 등사 간행했으며, 1976년 경인문화사에서 등사본을 재인쇄하는 방식으로 중간했다. 전적을 일일이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절, 조선화론집성을 보고 원본 본 양 논문에 각주 단 사람도 많았던 듯하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조선화론집성의 오타를 찾아 여기 나온 걸 누가 어떻게 인용했는지 찾아내고 싶다. 번역이 대접 못받는다고 하지만(그래서인지 "이런 건 왜 번역 안해"라는 사람들, 저서는 내도 번역서는 안내더라.) 사료집성이야말로 공만 많이 들고 얻는 건 별로 없다. 그래서 한국미술사사료집성을 펴낸 진홍섭 선생이야말로 이 분야의 존경을 받아..
고려거란전쟁으로 관심이 높아진 요나라. 신라와 당의 거센 공격으로 동북의 패자였던 고구려가 사라지자 거란은 그 자리를 대신해 이 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거란은 몽골초원 동쪽의 주요 세력으로, 한동안은 당과 돌궐 사이에서 힘의 지렛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거란이 세운 요나라는 발해를 멸망시킨 까닭에, 우리 역사에서 만주를 도려냈다는 점 때문인지 싫어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러나 오늘날 국적이나 경계를 구분으로 근대 내셔널리즘을 투영하는 건 의미도 없을뿐더러 온당하지도 한다. 삼국이 소멸할 때 그랬듯, 사람들은 이합집산하며 새로운 사회로 들어갔다. 지금부터 소개할 발해 출신 요나라 장수 고모한高模翰도 그런 이들 중 하나다. 고모한高模翰은 일명 송松으로 발해인渤海人이다. 근력이 있고 말을 타고 활을 ..
(구당서) 고구려의 적, 설인귀薛仁貴(전편) 이하는 구당서 설인귀 열전을 번역한 것이다. 설인귀는 평민 출신으로 뛰어난 무공으로 장수까지 올라갔다. 고구려 침공 시 선봉에서 섰으며, 신라와의 전쟁에서는 패배했다. 그는 요동 지역 뿐 alsdaskind.tistory.com (앞에서 계속) 얼마 후 다시 병사를 이끌고 천산天山에서 구성돌궐九姓突厥을 공격했다. 출발에 임하여 고종이 안에서 갑옷을 꺼내 인귀를 시험했다. 주상이 말했다. “옛날에 활을 잘쏘는 이들은 일곱 겹의 갑옷을 꿰뚫는다 했는데, 경은 다섯 번을 쏘시오.” 인귀가 쏘아 뚫자 고종이 깜짝 놀라 다시 견갑堅甲을 내어 주었다. 이때 구성은 무리가 10여 만이었는데, 싸납고 건장한 이들 수십명이 역으로 와서 도전했다. 인귀가 화살 세 발을 쏘아 세..
성姓은 혈연을 표시한 것이다. 한자 성姓에 여성[女]이 있는 것은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았던 모계사회의 전통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씨氏는 “신지神祗”로, 본디 천지신명, 즉 하늘과 땅의 여러 신들을 의미한다. 이후 동일 신(앙)을 가진 집단의 수장을 가리키는 존칭이 되었고 다시 각 집단을 대표하는 유력자의 자칭이 되었다. 씨는 ①자신이 분봉받은 나라의 명칭, ②자신이 다스리는 마을의 명칭, ③관직 명칭, ④직업 명칭, ⑤현재 거주지, ⑥왕 또는 제후와의 혈연관계를 의미하는 호칭, ⑦조상 중 특정인의 자字 등에서 기원했고, 이 씨를 가족 구성원 전체가 공유함으로써 성姓처럼 사용하게 되었다.(따라서 과거 어느 시점에는 봉지나 관직이 바뀌면 씨도 이를 따랐다. 즉 동일 가족이어도 다른 씨를 썼다.) 고염무의 ..
태형 중부 수진동 30통 5호에서 술장사로 영업하는 최광훈은 나이 지금 34세, 그 집에 있는 김소사는 나이 지금 48세, 중부 염천골 18통 가 1호에 사는 무업자 이기영은 나이 지금 58세인데 지나간 20일 오후 4시경에 최광훈의 집에 회동하여 화투를 하다가 그곳에서 순사에게 발견되어 소관 경찰서로 잡아갔는데 그곳에서 심사한 결과로 김소사는 무죄에 처했고 최광훈, 이기영 두 사람은 각각 볼기 30도를 때려 즉결처분하고 풀어줬다더라. (매일신보 1912.3.28.) 인간에게 바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 전부터 매질은 형벌로 사용되었다. 동아시아에서 가학적인 형태의 매질이 사라지고 매질의 기본 체계가 등장한 것은 당나라 때였다. 당나라의 법전인 당률은 매질을 태형과 장형으로 구분하고 각각 ..
뤄전위(또는 나진옥羅振玉)가 정리한 고창국 연표다. 뤄전위는 일본 체재 시절 오타니 탐험대 수집품을 실견할 기회를 가졌다. 그 가운데는 투루판에서 파낸 국씨고창국시대부터 당대까지의 묘전 12건(완형 기준)도 포함되었다. 이는 뤄전위가 고창국 기년을 정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럼 이하 그 서문이다. 고창국씨연표서高昌麴氏年表序 고창高昌의 건국은 북위北魏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멸망은 당唐 초기다. 백성은 염한炎漢(중국인)의 후예이며 그 임금은 서쪽 변경의 호족이다. 비록 개창하고 30년간 (임금의) 성이 세 번 바뀌었으나 (왕통이) 국씨麴氏에게 돌아가고부터 안으로는 문화와 교육을 진작하고 밖으로는 열강을 섬겨, 중원은 안정되지 못하고 해내는 분열되었던 때였건만, 서쪽 사람들은 도리어 소강小康 시대를 열..
2024년 1월 13일 중화민국 제16대 정부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가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투표율은 71.85%, 득표율은 40.5%(550만표)다. 이번 선거는 민진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장기 집권 피로감에 연이은 미투 사건, 바다 건너 중국의 위협까지.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민진당 승리. 라이칭더는 타이베이, 타이중, 타이난, 카오슝 대표 도시에서 모두 승리했다. (국민당은 치룽, 화리엔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우리로 따지면 국회의원인 입법위원 선거 결과는 사뭇 달랐다. 국민당 52명, 민진당 51명, 국민당이 1석 차이로 다수당이 되었다. 이는 2016년 68:35, 2020년 61:38과 비교하면 국민당의 화려한 부활이라 할 수 있다. 정상적 선거로 여소야대가 된 ..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에 내려 국립극장 또는 자유총연맹 방향 초입에 장충단공원이 있다. 장충단은 대한제국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제향을 올리고자 1900년에 세운 현충시설이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광무4년(1900) 10월 27일(양력) 남소영南小營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첫 제향은 이해 11월 10일 정오에 거행되었다. 소나무로 홍여문虹如門을 세우고 국기를 사면에 게양하고 단의 제1위에는 홍계훈洪啟薰을, 제2위에는 이경직李耕稙의 신위를 두고 이하 전몰자들의 위패를 세웠다. 이때 각부府, 부部, 원院 대소 관인과 각대 장졸, 무관학도가 모여 도열하고 군악을 연주했다. 또한 전몰자 가족들도 초청되어 오후 4시에 끝났다. 홍계훈은 을미사변 때 훈련대장으로 광화문에서 일본군을 막다가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