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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예년에 비해 덥지 않는 여름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 이러다 올해 쌀값이 대폭 오르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 홍수와 산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 중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하튼 전 세계가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다. 전쟁, 질병만큼 바로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후의 변화는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마치 악성 종양과 같이 퍼지기 전까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느끼는 순간 그 충격은 엄청나다. 그런 까닭에 역사를 공부하며 기후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사 분야에서 근자의 대작으로는 마크 엘빈의 “코끼리의 후퇴”가 있다. 그 선구적인 연구로서 추초칭의 고금기후변천고를 소개한다. 민국시대, 학문을 음미할 수 있는 좋은 글이다. 추초칭의 고금기후변천고(古今..
40권 부록 전록 16권 / 42책, 4함(건륭내부각본) 건륭제(乾隆帝)는 예술품의 수집과 정리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서청고감도 건륭제의 이런 관심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청대 궁정 소정 고대 청동기를 수록한 대형 도감으로 송대 고고도(考古圖)나 선화박고도(宣和博古圖)의 형식을 본떠 체제를 구성하였다. 상주시대부터 당대 동기(銅器)까지 1529건(동경 포함)을 매 건마다 도안, 명칭, 크기와 중량, 명문 및 명문의 주석을 수록하였다. 상주 제기가 많다. 청 양시정(梁詩正) 등이 칙명을 받들어 찬수했다. 1749년(건륭14) 시작하여 1755년(건륭20) 완성했다. 건륭20년 무영전(武英殿) 각본이다. 광곽은 29.5cm×22.6cm, 각 페이지(반면)는 10행이며 한 행에는 18자를 넣었다. 백구 단어..
현해탄은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가리켰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현해탄을 "대한해협 남쪽,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 서북쪽에 있는 바다. 우리나라와 규슈(九州)를 잇는 통로로, 수심이 얕고 풍파가 심하다. 쓰시마(對馬) 해류가 동북쪽으로 흐르고 동해 해류가 남쪽으로 흐르며, 방어ㆍ정어리 따위의 난류성 어류가 많이 잡힌다."고 정의하였다. 네이버 한자 사전에는 일본어 “겐카이나다”를 우리식 발음으로 읽은 것이라 하였다. 한편 요즘 쓰는 일본어 겐카이나다는 현해탄이 아니라 “玄界灘(현계탄)”이다. 심지어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면, “玄海灘”은 바다를 뜻을 가진 글자 두 개를 중첩해 쓴 것으로 잘못된 것이라 하였다. 이상 사전적 정의를 정리하면 현해탄은 오랫동안 일본 사이의 바다를 가리켰지만, 이는 잘못 ..
꼭두각시 인형을 읊다 傀儡吟 刻木牽絲作老翁, 鷄皮鶴髮與眞同. 須臾弄罷寂無事, 還似人生一夢中. 나무를 깎고 실을 당겨 늙은이를 만드니 닭살이며 백발이 진짜 같구나. 한 바탕 놀이가 끝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해지니 그야말로 꿈같은 인생이로다. 당나라 현종(玄宗)이 읊은 시다. 현종 ‘개원(開元)의 성세’는 당의 절정기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천보(天寶) 14재(755) 안록산의 난의 발발하고 낙양과 장안의 방어에 실패하면서 자신은 애첩 양귀비와 제위를 잃고 나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음악과 가무, 예술과 예능을 두루 즐겼던 현종이기에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안사의 난 이전에 지었다면 징험일 것이오, 그 이후에 지었다면 절창이 아닐까 싶다.
이주는 오늘날의 하미이다. 태종 때 이오의 호인이 귀부하자 서이주를 설치했다.(630) 처음에는 기미주로 운영하다가 이주로 이름을 바꾸고 직할 주로 편재했다. 돈황 발견 천계원년 사주이주지지(沙州伊州地志)에 “보응연간(762~763) 토번에 함락되었다. 대중4년(860) 장의조가 수복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보응 원년 하서 제주는 여전히 건재했다. 아래 기록은 이주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 원광정은 하서 수장이다. 천보말년 이주자사가 되었다. 안록산의 난으로 서북변경의 수비병이 반란 진압에 투입되면서 하서, 농우의 군읍이 모두 토번에 함락되었다. 오직 광정 만이 수년간 이주를 지켰다. 외부로부터 구원이 당도하지 않자 오랑캐는 여러 가지를 내밀며 꾀어냈지만 그는 끝내 굽히지 않았고 부하들도 뜻을 같이 ..
모난 돌이 정 맞듯이 사람들에게 스케치북처럼 보이는 돌도 있다. 울산 천전리 암각화는 누가 봐도 스케치북이나 광고판처럼 보인다. 저 멀리 서역에도 그런 바위가 있었나 보다. 사람들이 오래 산 터전은 다 이유가 있듯, 새기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 환채구비가 있는 길은 사막 오아시스와 초원지대를 연결하는 통로로, 사막 오아시스는 여기를 통해 목재를 수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640년 고창국 원정 직전 당의 장수 강행본(姜行本)도 이 길로 나무를 가져와 투석기를 만들었다. 이하 설명은 마옹(馬雍)의 글을 옮긴다. 사진은 바이두에서 다운 받은 것인데, 글자는 못읽더라도 한번 가보고 싶다. 동한 영화5년(140) 환채구비(煥彩溝碑), 옛 사남후비(沙南侯碑) 환채구(또는 환차이거우)는 하미(哈密)에서 바리쿤(巴里坤..
장다첸(張大千)은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무언가 자료를 찾던 중 한 신문기사에서 그가 조선을 유람하고 조선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보고 사뭇 놀랐다. 그를 조선으로 초대한 일본인 에토 나미오(江藤濤雄)는 20세기 초 중국 시안에서 장사를 하던 중, 조선총독부박물관 소장품 구입차 중국에 갔던 동경제대 교수 세키노 다다시(關野 貞)의 조수 역할을 하며 후일 골동품상으로 성장한 자이다. (도쿄 우에노에 상점을 차릴 정도로) (위의 천녀산화는) 그가 그린 불교인물화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그림 속의 천녀는 사실 그의 이국 연인이었던 조선 소녀 지춘홍(池春紅)이다. 1927년 29세의 장다첸은 일본인 골동상 에토 나미오의 요청에 따라 일본 점령 하의 조선에 방문하여 금강산을 유람한..
世宗 58卷, 14年(1432 壬子 / 명 선덕(宣德) 7年) 12月 15日(庚子) 2번째기사 서운관에서 월식을 아뢰니, 승정원에 구식할 필요가 없음을 전지하다 ○ 書雲觀以月食啓, 傳旨承政院曰:當食而食, 古人不以爲災。 況今日月已落, 食與不食未可知, 不可以爲災, 不必救食, 如何? 安崇善等啓: “上敎至當。” 서운관에서 월식을 보고하였다. 승정원에 전지하기를 “식이 일어나는 때 식이 일어나는 것은 옛 사람들도 재앙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물며 오늘은 달이 이미 졌으므로 월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재앙이라 할 수도 없으니 식을 계산할 필요가 머 있겠는가? 어찌 생각하는가?” 안숭선 등이 아뢰기를 “상교가 지당합니다.” 하였다. 늘 생각이 들었던 문제인데, 굳이 찾아보지 않다가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
오호십육국 가운데 후조(後趙)라는 나라가 있다. 흉노의 일파라고 하는 갈족(羯族) 출신 석륵(石勒)이 세운 나라로, 서진(西晉)을 멸망시킨 유총(劉聰)-유요(劉曜)의 전조(前趙)를 멸하고 일시 화북을 석권하였던 나라다. 건국 군주 석륵은 비록 이민족 출신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나름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군주였다. 비록 그의 집권기 내내 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한족 문인들이 중국의 고전을 읽어주는 것을 즐겼다. 그가 죽은 후, 아들 석홍(石弘)이 즉위하였지만 모든 실권은 종제(친동생일지도 모르지만) 석호(石虎)의 손에 있었다. 이 석호라는 인간은 너무도 전쟁터를 전전한 탓인지 인간도륙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이런 삼촌이 버젓이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상, 아버지가 황제라는 이유로 ..